세금체납 ‘블랙리스트’ 기준 완화… 38만여명 대출 ‘숨통’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정부과천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정책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세제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과천=연합뉴스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정부과천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정책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세제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과천=연합뉴스
年소득 3000만원이하 근로자
국민주택 월세 살면 소득공제

中企-개인사업자 - 농어민
‘비과세 일몰’ 대부분 연장

中企 가업 상속 요건도 완화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정부는 경제가 좋아져도 가장 늦게 혜택이 돌아갈 서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20일 내놓은 ‘친(親)서민 세제지원 방안’은 이런 고민을 세금이라는 수단을 통해 풀어보자는 취지의 해법이다. 매년 일괄적으로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세제개편안 중에서 영세 자영업자, 저소득 근로자, 농어민,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책만 별도로 추려 미리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지금까지 세제지원은 주로 급여를 받는 근로소득자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번에는 영세 자영업자의 세제지원을 확대한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폐업한 영세 개인사업자에 대한 대규모 ‘세금 사면’ 등 일부 항목은 정부의 의도와 달리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도 있어 정교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영세자영업자 세금 혜택으로 지원

정부는 신용정보회사에 통보되는 세금 체납자 대상을 내년부터 2년간 한시적으로 500만 원 이상에서 1000만 원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금융권에서 세금 때문에 대출을 제한하는 ‘블랙리스트’ 명단도 연 45만 명에서 7만 명으로 줄어들어 38만 명 정도는 대출에 숨통이 트인다.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에게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500만 원 한도에서 세금 사면을 해주기로 한 것도 자영업자 지원의 주요 대책이다. 그동안 이들은 ‘체납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탓에 사업자등록을 낼 수 없었던 데다 대출받을 길도 막혀 있었다. 이 때문에 폐업 경험이 있는 일부 자영업자는 제3자 명의로 ‘바지사장’을 내세워 편법 영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창업과 폐업을 번갈아하며 고의로 세금을 탈루하는 일부 자영업자까지도 이런 혜택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자영업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 지원책을 내놓음으로써 구조조정에 번번이 실패했던 과오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점도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 서민층 비과세 연장-소득공제 확대

정부는 올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는 과정에서 재정건전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비과세·감면 제도를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이번 방안에서 올해 말로 일몰기한이 다가오는 개인사업자와 농어민, 중소기업 등에 대한 비과세 제도는 대부분 연장돼 2011년 또는 2012년 말까지 세제 지원을 계속하기로 방침을 굳혔다.

재정부 당국자는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24일 발표할 세제개편안에 충분한 대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층에 대한 세제 지원은 계속하되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비과세·감면 제도를 대폭 줄이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이번에 연장된 제도로는 △성실 납세 개인사업자에 대한 의료비와 교육비 소득공제 △농어가목돈마련저축의 이자소득 비과세 △마라도 등 도서지역의 자가발전용 석유류에 대한 부가가치세 및 교통세 면제 △공장 학교 등 구내식당 음식요금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 등이 있다. 올해 말이 일몰기한인 창업 중소기업 등에 대한 세액감면 등 6개 중소기업 지원 제도는 2012년 말까지 3년간 일괄 연장됐다. 일몰 연장으로 인한 총세제 지원 규모는 1조 원에 이른다.

월세에 대한 소득공제도 저소득층의 가계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총급여 3000만 원 이하 근로자는 930만 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국민주택 규모(전용면적 85m²) 이하의 소형 주택에서 월세로 살 경우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세제 혜택이 900억 원에 불과해 서민 세제 지원대책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한편 근로장려세제(EITC) 도입에 따라 부부합산 연소득 1700만 원 이하, 재산 1억 원 이하, 1자녀 이상 등의 요건을 갖춘 근로자에게 연간 최대 120만 원까지 지급하는 근로장려금은 추석 전에 모두 지급하기로 했다. 현재 72만 가구가 신청해 심사하고 있으며 지급규모는 약 5600억 원으로 예상된다.

○ 취약계층 지원 위해 기부문화 활성화

정부는 재정만으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세제혜택을 통해 민간의 자발적인 기부를 유도하기로 했다. 우선 금융회사가 휴면예금을 소액서민금융재단(휴면예금관리재단)에 기부할 경우 현재는 금융회사 소득의 5% 한도 안에서만 손비(損費)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손비인정 한도가 50%로 확대된다. 또 지금까지 기부금을 비용으로 인정받으려면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에 기부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개인 또는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해도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기준이 없어 ‘가짜 영수증’을 제출하고 연말정산 등을 통해 세금을 감면받는 사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 가업(家業) 상속 요건을 완화한 것도 눈에 띈다. 현재 가업을 물려받은 중소기업인이 상속재산의 40%(100억 원 한도) 공제 혜택을 보려면 가업을 물려준 피상속인이 생전에 물려준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80% 이상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근무해야 하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자격요건이 ‘60% 이상 또는 상속 개시 전 10년 중 8년 이상’으로 완화됐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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