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가뭄’ 타개… 英방식 ‘해갈 카드’ 꺼내

  • 입력 2008년 12월 9일 03시 00분


임태희 정책위의장
임태희 정책위의장
정부, 국책銀 통해 시중銀에 출자 검토

BIS비율 높여 기업지원 확대 유도 고육책

은행권 “특정銀이 최대주주되면 위법” 반발

임태희 의장 “지금은 정치적 결단이 필요”

여권이 시중은행에 대한 직접출자 방식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이유는 꽁꽁 얼어붙은 기업대출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일선 창구에서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비상 카드’인 셈이다. 정부가 국책은행을 통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대폭 높여 기업대출을 늘리겠다는 구도다.

▽영국식 국유화 방식을 모델로=정부와 한은이 금융시장 안정과 대출 확대를 위해 지금까지 금융시장에 투입했거나 투입하기로 한 자금은 130조 원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달 시중은행의 신규 중소기업 대출 순증액은 4조3000억 원으로 지난해(월평균 5조7000억 원)나 올해 상반기(월평균 5조9000억 원)보다 25%가량 줄었다.

정부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는 이유는 대출을 할수록 BIS 비율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기업 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이 늘면 은행의 건전성 지표인 BIS 비율이 떨어지게 된다.

정부가 BIS 비율을 높이기 위해 한은을 통해 은행들의 후순위채를 사들였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BIS 자기자본에는 납입자본금 등 영구적 성격의 자본인 기본 자본(TIER1)과 후순위채 등이 포함된 보완 자본(TIER2)이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부채 성격이 강한 보완 자본보다는 기본 자본 비율을 높이도록 요구한다.

6월 말 현재 우리은행의 BIS 비율은 10.39%이지만 기본 자본비율은 8% 밑으로 떨어졌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후순위채 매입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기본 자본비율을 높이는 게 더 낫다”며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의 국유화 과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이 10월 바클레이스 등 4개 대형은행 국유화를 통해 자기자본비율을 대폭 높이겠다는 의지를 밝힌 다음 금융시장이 안정된 선례를 참조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정책위 관계자는 “미국은 은행들의 후순위채를 인수해줬지만 결국 씨티은행이 다시 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았느냐”며 “영국식 모델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시중은행 참여도 독려할 것”=임 의장은 “내년 예산을 통해 한국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대한 정부출자를 대폭 늘린 뒤 이를 통해 우리은행의 BIS 비율을 13∼14%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을 지목한 이유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이어서 국책은행의 신규 출자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데 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의 BIS 비율을 1%포인트 높이려면 1조4000억 원가량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내년에 산은 등에 대한 정부의 추가 증자도 고려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우리은행에 대한 국책은행 출자가 성공해 은행도 건전해지고 기업 대출도 늘어나면 이 모델을 다른 시중은행에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은행들은 반발=시중은행들은 일단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은 특정 은행이 다른 금융지주회사의 지분을 10% 이상 갖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지분이 10% 미만이라도 최대 주주가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을 바꾸지 않는 한 대규모 지분 참여가 제한돼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임 의장은 “정부의 지분 참여에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구시대 논리”라며 “지금은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기존 주주들의 반발도 문제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처럼 주가가 낮은 상태에서 산은 등에 유상증자로 지분을 줄 경우 정부가 적은 금액으로 은행 지분을 많이 확보하게 된다”면서 “외국인 주주들은 향후 정부가 개입할 것을 우려해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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