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대출로 종업원 임금 줬지만 임차료 막막”
스커트 5000원에 팔아도 주말 동대문 쇼핑가 썰렁
지난달 24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A쌈밥식당. 저녁식사 시간인데도 70여 석의 홀엔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주인 배모(54·여) 씨는 “9월 8일 문을 열었는데 하루 매상이 30만 원도 안 된다. 종업원 임금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대출을 받아 줬지만 두 달째 임차료를 못 냈다. 상점 주인이 곧 내용증명을 보낸다고 한다”고 말했다.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자영업자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 한국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 말까지 전국에서 4만6788개의 식당이 폐업했고 15만1767개의 식당이 휴업했다.
○ 식당, 술집 등 생존 기로
배 씨가 내민 장부에는 요즘 자영업자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10월 총매상은 956만3000원. 채소 쌀 고기 물수건 등 각종 재료비 983만4300원, 인건비 233만 원, 임차료 180만 원, 관리비 및 전기·가스·수도요금 80만 원을 더하니 총경비가 1476만4300만 원. 520만1300원이 적자였다.
배 씨는 장부의 각 장 위쪽에 ‘지출 줄이기’ ‘지출 줄이고 정신 차리기’라는 문구를 볼펜으로 꾹꾹 눌러 써 놓았다.
서울 중구 무교동의 한 낙지음식점 주인 김모(64·여) 씨는 “가격표만 보고 나가는 손님이 많아졌다”며 “지난해 9명이었던 종업원을 하나 둘 내보내 지금은 5명뿐”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주방장까지 내보내고 새벽까지 직접 식자재를 다듬다 몇 개월 전 쓰러지기도 했다.
연말 술자리가 줄어든 데다 회식을 해도 2차를 안 가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술집도 매출에 타격을 받고 있다. 서울 중구의 한 주점 주인은 “10월에는 적자가 났고 지난주에는 사흘 동안 손님이 없었다. 연말 특수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 “연말 특수도 없다” 한숨
지난달 28일 오후 8시 반 서울 동대문운동장 인근의 대형 쇼핑몰 밀리오레. 동대문 의류 쇼핑몰을 대표하는 이곳은 주말 저녁임에도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한산했다.
2층 여성복 매장에 앉아 있던 김모(54·여) 씨는 “딸(28)이 운영하는 가게인데 장사가 안 돼 종업원을 줄이고 내가 나와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손님이 줄어 오전 내내 한두 개밖에 못 팔 때도 있다”고 말했다.
각 매장 앞에는 ‘스커트 5000원’ ‘후드티 1만 원’ 등 저가(低價)를 강조하는 광고 문구가 요란했다. 비어 있는 점포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다른 쇼핑몰은 더 심했다. 이날 오후 9시경 동대문 최초의 백화점식 쇼핑몰을 표방한 케레스타(옛 거평프레야)를 방문했더니 4층 남성복 매장 전체에 손님이 단 1명뿐이었다.
분양사기를 이겨내고 지난달 14일 문을 연 굿모닝시티는 상당 부분 비어 있는 층도 있었다. 주말 저녁시간임에도 8층 식당가에는 식당 수보다 손님 수가 더 적었다. 굿모닝시티 7층에서 전기전자용품을 판매하는 이모(53) 씨는 “오늘은 2만5000원짜리 전화기 한 대를 팔았다. 하루 10만 원도 벌기 힘들다”고 말했다.
○ 자영업자 고전은 구조적인 문제에 불경기가 겹친 것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6.5%(2006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 또 향후 경기침체도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경제가 고도화되면서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자가 크게 늘었고 그 부작용이 경기침체를 맞아 다시 불거지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자영업 분야의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만큼 재취업을 돕는 직업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