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사설정보지 제작팀 최소 10여개… 악성루머 양산

  • 입력 2008년 10월 4일 03시 00분


■ ‘최진실 괴담’ 진원지로 확인

3년전 ‘연예인X파일’ 이후 잠잠하다 다시 활개

증시 침체 길어지자 유명인 사생활 소재 많아져

메신저로 뿌려져… “대량 유포할 경우 처벌 가능”

‘탤런트 ○○○는 잠자리 습관이 변태 같음.’ ‘○○○는 앞에 누가 있든 말든 상관없이 남자한테 들이대는 게 특징임.’ ‘○○○는 얌전한 것 같지만 완전 ‘색녀’로 알려져 있음.’

최근 서울 여의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한 연예인 관련 사설정보지(일명 ‘찌라시’)의 내용 중 일부다.

이 파일에는 유명 연예인 80여 명의 성생활과 연애스토리, 내밀한 가족 얘기 등 근거 없는 악성 루머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일부에서는 이 문건이 2005년 초 국내 유명 연예인 99명에 대한 사적(私的) 정보가 실명으로 돌면서 사회를 뒤흔들었던 ‘연예인 X파일’의 ‘2탄’이란 얘기도 나돌고 있다.

탤런트 최진실 씨 자살의 주요 원인이었던 ‘사채업 괴담’도 바로 이 같은 증권가의 정보지에서 비롯됐다.

○ 정보지의 검은 생태계

이처럼 정치인과 기업인 관료 연예인 등에 대한 악성 루머들을 담은 정보지는 경찰이 2005년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는 등 근절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활발히 유통되며 ‘검은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전파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데다 발원지가 어디인지를 알기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정보지는 공식 언론 보도에서는 접할 수 없는 정·관·재계의 ‘고급’ 정보나 첩보들을 모은 것으로 초기에는 정부 고위 관료나 대기업 임원 등 극소수를 대상으로 비밀리에 유통됐다. 1980년대 이후엔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기업정보가 종이 묶음 형태로 주로 생산됐다. ‘증권가 찌라시’라는 용어가 생긴 것도 이즈음이다.

그러나 요즘 정보지는 인터넷과 메신저 등의 발달로 파급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또 단속에 대비하기 위해 문서를 암호화하거나 복사 및 출력을 못 하게 하는 등 유통 수법도 ‘진화’를 거듭했다.

한 증권사 직원은 “여의도에서 정보지는 보통 메신저 ‘떼 쪽지’의 형태로 무차별적으로 뿌려진다”며 “최 씨의 루머도 한두 줄 정도로 얼마 전부터 급속도로 퍼졌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런 정보지를 생산하는 팀이 아직도 최소 1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팀에는 대기업 정보담당자와 국회의원 보좌관, 검찰·경찰 관계자, 정보기관 직원 및 일부 언론인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은 자발적으로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나 정보를 취합한다. 이 같은 ‘정보회의’를 통해 생산된 정보지는 일정 가격에 재계 및 증권가에 팔린다.

○ “울며 겨자 먹기로 본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보지를 받아 본다는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이 정보지를 구독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 달에 50만∼200만 원으로 다양하다”며 “정보지를 만드는 사람 중에는 과거 증권사나 기업에서 정보담당자로 활동하다가 은퇴한 뒤 현업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받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증시 침체기가 이어지면서 기업이나 정치 관련 내용보다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담은 것이 늘어났다. 연예인 얘기는 비록 자신의 사업이나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는 아니지만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울 때 ‘안줏거리’로 인기가 높다. 이렇게 사적인 모임에서 흘러나온 루머는 인터넷 등을 거쳐 일반인에게도 빠르게 퍼져 나간다.

한 기업의 홍보담당자는 “몇 달 전부터 정보지에 우리 기업이 검찰 내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 떠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문은 결국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고 기업 이미지만 타격을 입었다. 특히 최근에는 ‘유동성 위기설’ 등 기업들의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허위 루머가 정보지를 통해 유통되면서 많은 기업이 피해를 봤다.

기업에서는 보통 자기 기업과 관련된 루머가 유통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정보지를 구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보지가 믿을 만해서가 아니라 ‘미리 알고 대응하기 위해’ 본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공직자들도 사정당국에서 정보지를 근거로 공무원에 대한 비리 감찰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구독한다. 최근에도 한 정부 부처의 고위 공무원이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소문이 정보지에 오르내리고 이것이 일부 언론에까지 보도되면서 결국 옷을 벗은 일이 있었다.

○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찌라시의 폐해를 더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지경이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터넷의 발달로 한꺼번에 아주 많은 사람에게 퍼지는 데다 유통 단계도 워낙 복잡해 생산자 등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독버섯처럼 퍼지는 정보지에 대해 경찰도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간부는 “정확히 몇 개의 정보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유통되는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피해자의 의뢰가 없다면 단순히 허위 사실이나 명예훼손 논란이 있는 정보를 개인적으로 전달했다는 것만으로 수사를 하긴 어렵다는 반응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단순히 받아 보는 것은 몰라도 문제의 정보지를 여러 사람에게 퍼뜨리기 위해 만들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대량 유포하는 등의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영상취재 :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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