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생명, 3조 부실 털어내고 정상화… 한화의 성공스토리

  • 입력 2008년 6월 9일 03시 01분


1999년 늦봄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회의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포함해 주요 계열사 사장단 10여 명이 모여 하반기 경영계획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김 회장이 말했다. “대한생명 인수를 검토해 봅시다.”

참석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당시 대한생명은 대주주의 전횡 및 계열사에 대한 부실대출로 금융감독원의 특별감사를 받고 있었다. 누적결손금이 3조 원에 이르렀고, 보험의 핵심인 영업조직은 붕괴 직전이었다.

참석자들은 “너무 부실한 회사를 인수하면 자칫 한화그룹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외환위기 때 계열사 수를 37개에서 17개로 줄이면서 한화그룹이 많이 위축됐다”며 “구조조정 덕분에 여유자금이 1조 원 정도 있으니, 향후 주력사업으로 금융업에 집중해 보자”고 강조했다.

○ 김승연 회장 성장발판 마련

그로부터 3년여 뒤인 2002년 12월 한화컨소시엄은 대한생명을 인수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김 회장은 금융업을 신(新)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당시 맡고 있던 대표이사 직을 모두 버리고, 무보수로 대한생명 대표이사에만 2년 동안 전념했다.

그는 M&A 후유증을 없애고, 조직과 경영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기존 대한생명 경영진을 대부분 중용했고, 한화그룹에서 파견된 임직원은 20여 명에 그쳤다.

M&A 후 통합(PMI) 작업에도 힘을 쏟았다. 특히 대한생명의 조직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였고, 사원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객 중심’의 비전을 제시했다.

염제상 대한생명 노조위원장은 “한화가 정(情) 중심의 대한생명 조직문화를 존중했고, 인수 과정에서 ‘점령군’이란 느낌을 주지 않았다”며 “지금은 대한생명 직원들이 한화 이글스의 야구 경기를 응원 갈 정도로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 신은철 부회장 영업력 강화

한화는 2003년 생명보험업계에 30여 년간 몸담은 신은철 전 삼성생명 보험영업총괄 사장을 대한생명 사장으로 영입했다. 신 사장은 2005년 부회장으로 승진해 김 회장으로부터 대표이사 직을 이어받았다.

신 부회장은 우선 영업력을 강화했다. 영업의 역할을 기존 ‘아줌마부대’가 보험을 판매하던 것에서 재무 전문가가 소비자의 재무 설계를 짜주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를 위해 2005년 9월 남성 대졸자를 중심으로 ‘대한생명 KLD(Korea Life Division)’를 만들었다.

해외 채권과 사회간접자본(SOC), 파생상품 등 투자 대상을 다양화하고, 방카쉬랑스 등 새로운 영업 채널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김 회장과 신 부회장의 ‘이어달리기’ 효과는 컸다.

올해 4월 기준으로 대한생명의 자산은 50조2137억 원으로 인수 당시(29조598억 원)와 비교해 2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말 한국신용정보와 한국기업평가로부터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받았고, 최근 누적결손금도 모두 해소했다.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현시점에서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는 성공작으로 꼽힌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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