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 노무현보다 못한 이들 많다” 손학규 FTA 승부수

  • 입력 2008년 4월 21일 02시 54분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한미 FTA는 국익증진’이란 확신을 갖고 있는 당 대표로서 당내 다수인 FTA 반대의견에 맞서면서 정치적 승부를 걸어야 할 상황에 직면한 탓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비준안의 4월 임시국회 상정을 예고해 왔다.

손 대표는 18일 “우리 당에 (한미 FTA를 체결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못한 사람이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노 전 대통령이 전통적 지지자들의 반대 속에서도 국익을 위해 FTA 협상을 마쳤지만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한 상당수 당내 인사가 ‘내 선거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머뭇거리는데 동의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의 표정과 어조에서 비장함이 묻어났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20일 “손 대표는 당내 논의 과정에서 ‘한미 간 무역확대 이외의 대안을 내놓아 보라’며 반대론자를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측근은 “손 대표의 공론화 시도 이전에는 찬성자조차 찬성 의견을 꺼내기 어려웠지만 대표가 총대를 멘 이상 이런 기류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한미 간 쇠고기 협상 결과 때문에 손 대표가 당내에서 FTA 리더십을 발휘해 의원들을 대상으로 설득작업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민주당은 19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협상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조공이었다”며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맹비난했다.

민주당은 한미 FTA에 대해 당 대표가 찬성하고 다수 의원이 반대하는 독특한 구도가 형성돼 있다. 그런 만큼 국회에서 당론 표결보다 ‘각자 투표(크로스보팅)’가 점쳐지고 있다. 손 대표 측은 “18대 국회로 넘겨진 뒤 한미 FTA가 투표에 부쳐지면 한나라당은 어차피 통과시킨다”며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한나라당에 더 큰 피해자 대책을 양보 받으며 FTA를 비준 동의하는 게 맞다”고 말하고 있다.

손 대표의 이러한 시각을 보는 당내 시선은 곱지 않다.

김근태 천정배 의원 등 진보진영에서는 “손 대표가 한나라당 출신이라 어쩔 수 없다. 우리와 생각이 너무 다르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호남 및 충청의 농촌지역 의원들도 ‘일단은 반대’다.

수도권에서도 진보인사들의 반대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한미 FTA는 원내대표 선출(5월) 및 전당대회(6월 중순)를 앞두고 민주당 내 정체성 논란을 유발하고 있다. ‘2선 후퇴’를 선언했음에도 손 대표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사안이 돼 버렸다.

그럼에도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손 대표가 굳혔다는 게 참모들의 설명이다.

손 대표는 6월 전당대회를 마무리한 뒤 당 대표직을 물러나면서 ‘원외 정치’를 하게 된다. 민심만이 그가 의존할 대상이란 얘기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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