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상 타결 1주년 특별 인터뷰]김현종 유엔대사

  • 입력 2008년 4월 1일 02시 53분


“美 민주후보, 경선 끝나면 국익차원 접근할 것”

《지난해 4월 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최종 타결될 때까지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협상팀을 이끈 김현종 유엔 주재 한국대사. 당시 그는 전권을 위임받아 한미 FTA 협상 시작에서부터 전략 수립, 최종 타결까지 대미 FTA 협상을 총괄 지휘했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지 1년. 하지만 한미 FTA는 양국 의회의 비준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 있다. 지난달 25일 유엔 한국대표부에서 김 대사를 만나 한미 FTA 비준 전망과 협상 과정의 비화 등에 대해 들어봤다.》

―현재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은 한미 FTA를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의회 비준은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지금은 경선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후보들은 경선이 마무리되면 좀 더 중립적이고 미국 전체의 국익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다. 물론 의회 심의과정에서 논란이 있고,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경선에서 반대했다가 후보가 된 뒤 말을 바꾸는 게 가능한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경선 중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반대하다 대통령 당선 후 의회의 NAFTA 비준을 위해 총력전을 펼쳐 결국 관철시켰다. 특히 미국으로선 한미 FTA가 무산되면 아시아에서의 입지에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세계 경제 지도국으로서 신뢰도에도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이다.”

―한미 FTA의 미 의회 비준을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우선 4월 9일 총선이 끝나자마자 국회가 협정 내용이 국익에 부합하는지 판단해 조속히 비준동의안을 처리해 주기를 기대한다. 한국이 먼저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면 미 의회 비준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나아가 한국이 유럽연합(EU), 그리고 캐나다와의 FTA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하면 미국도 상당한 압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주요 교역상대국 중 왜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미국과 FTA를 먼저 맺는 전략을 택했나.

“원교근공(遠交近攻) 차원이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지정학적 현실을 감안할 때 미국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구축해 중국 일본과 경쟁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에서 한국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낮아지는 현실도 고려해야 했다.”

―개방을 하고, FTA를 맺는 것이 과연 좋은 건가.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개방을 해서 반드시 잘 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방을 하지 않아서 망한 나라들은 있다. 2003년 통상교섭본부에 들어왔을 때 세계무역기구(WTO) 149개 회원국 중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는 몽골과 한국 두 나라뿐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로선 부끄러운 현실이었다. 한국 기업이 전 세계에서 뛸 수 있도록 정부는 FTA라는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해야 할 의무가 있다.”

―FTA 협상과정에서 가장 분수령이 됐던 시점은 언제였나.

“최종 협상이 진행되던 지난해 3월 마지막 주가 가장 어려웠다. 3월 28일 오전 4시 미국 측이 자동차 양허안을 가져왔는데 전혀 진전이 없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런 안이라면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미국 협상 지도부에 고함을 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때 속으로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30일 오전에 미국 측이 협상을 속개하자고 잠을 깨웠다. 미국 측은 진전된 내용의 자동차 양허안을 가지고 나왔다.”

―돌이켜 보면 한미 FTA 협상이 성공하게 된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협상단 멤버가 참 좋았다. 일일이 이름을 열거할 수는 없지만, 정말 애국심 하나로 똘똘 뭉쳐 있었고 실력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협상이 고비에 이를 때마다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줬다. 협상이 출범할 때부터 청와대 보좌진 다수가 한미 FTA에 반대했지만 노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추진해야 한다고 결단을 내려줬다. 국운도 따랐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2기 들어 미국은 태국 말레이시아와의 FTA 협상마저 무산되면서 한국과의 FTA 타결이 절실했다.”

―FTA와 관련해 식량 확보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아는데….

“곡물자급률이 28%에 불과한 한국으로선 안정적인 곡물 확보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해외 농업생산기지를 확보하는 방안도 FTA에 포함할 수 있다. 과거 우리가 시도했던 아르헨티나는 한국에서 너무 멀고 자녀교육 대책이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뉴질랜드처럼 한국에서 가깝고 영어권 선진국이어서 자녀 교육에 상당히 유리한 곳도 있다.”

―유엔대사로서 요즘 어떻게 지내나.

“매우 바쁘게 지낸다. 유엔에선 매일 수많은 회의가 개최되는 데다 1월부터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부의장직을 맡아서 일이 더 많아졌다. 개인적으로는 통상교섭본부장 시절부터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모시고 일을 해 왔다. 여기에서도 반 총장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려 한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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