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집값 급등’대책은… 정부개입 없다! 시장자율 있다!

  • 입력 2006년 11월 16일 02시 57분


《부동산 가격 급등은 ‘글로벌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 영국 중국의 대도시 지역에서 집값은 매년 두 자릿수 이상 급등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해 있어 주택용 토지 공급 능력이 제한돼 있는 한국과 이들 국가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급등에 대한 각국 정책 당국의 대처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주요 국가 부동산시장의 추이와 정책당국의 대처를 점검해 본다.》

미국 뉴욕에서 가까운 뉴저지 주 버건카운티. 뉴욕과 바로 붙어 있고 학군이 좋아 중산층 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요즘 이곳에는 ‘집 팝니다(For Sale)’란 팻말이 있는 집이 많다. 부동산중개협회를 통해 나온 매물은 모두 4060채.

전에는 한 달도 안 돼 팔렸지만, 요즘은 6개월이 넘어도 팔리지 않는 집이 부지기수다. 지금 미국 부동산시장은 ‘세일 중’이다.

지난 4년 동안 수직상승한 미국 부동산시장이 올해 2분기(4∼6월)부터 차츰 냉각되고 있다. 3, 4년 사이에 2배 이상 폭등한 버건카운티의 집들도 최고가에 비해 7∼10% 하락했다.

▽미국 부동산은 연착륙=통화 당국의 금리인상이 결정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올리면서 이자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선 부동산가격 급등의 후유증이 전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FRB가 금리인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줄 뿐 정부 차원에서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 일은 없다. 한국식으로 백악관에서 부동산대책회의를 하고 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철저히 시장 메커니즘에 맡길 뿐이다.

은행도 자율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정해 고객의 신용을 평가한 뒤 돈을 대출해 준다. 다만 카운티나 시정부가 부동산개발 허가를 내줄 때 서민용 주택을 일부 건설한다는 조건을 내거는 방식으로 시장에 관여할 뿐이다.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은 “땅이 넓고 좋은 주거지가 많이 있는 미국과 국토가 좁은 한국을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다”며 “개인적으로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조언했다.

▽특별한 부동산 대책이 없는 영국, 공급 확대에 주력하는 프랑스=핼리팩스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평균 주택 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3배 가까이 상승했다. 같은 기간에 런던의 집값은 240%나 치솟았다.

‘과열’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는 않는다. 금리를 통해 부동산 경기를 조절하는 방식을 고수할 뿐이다.

영국중앙은행(BOE)은 9일 기준 금리를 5년 만에 최고치인 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영국 정부는 이처럼 부동산 경기가 과열되면 금리를 올리고 침체될 때는 금리를 내린다. 이 단순한 조치가 통하는 것은 영국인들이 집을 살 때 대부분 모기지론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금리 조절 외에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없다. 또 부동산 정책이 장기 계획에 따라 진행되므로 불안 심리가 높지 않다.

프랑스의 부동산 가격도 2000년대 들어 최근까지 일부 지역에서는 2배 이상 오를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프랑스 정부는 집값 상승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부동산 정책은 ‘공급 확대’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저소득층 대상의 저임대료 공공 주택을 꾸준히 확충하고 있다.

그 대신에 프랑스는 양도 차익에 27%가량의 세금을 부과하고 일정 액수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부유세를 물리는 식으로 투기성 부동산 거래를 막고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日, 의도적 저금리… 거품만 키워

中, 규제 강화 →집값폭등 악순환

▽저금리에서 시작된 일본의 부동산 거품=일본의 부동산 거품은 정부가 유도한 저금리 정책에서 비롯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통상압력이 강화되자 일본은 경상수지 흑자를 축소하고 내수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으로 돌아섰다. 의도적인 저금리의 부작용은 1980년대 말부터 ‘부동산 거품’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여기에 1987년 수도권 인구집중을 막고 국토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명분으로 ‘다극분산(多極分散)형 국토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개발 계획이 있는 곳마다 땅값이 폭등했다. 내수 부양을 위해 정부가 고집했던 저금리 정책과 맞물리면서 부동자금이 대거 부동산시장으로 몰렸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아파트 값에 불안감을 느낀 일본인들은 저금을 털고 대출을 보태 앞 다퉈 집 장만에 열을 올렸다. 지금 우리 돈으로 3억∼4억 원 하던 20평형 아파트의 분양가가 당시 10억 원을 훨씬 웃돌았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국민의 불만이 치솟아 정권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자 일본은 금리 인상으로 돌아서면서 부동산대출총량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시기를 놓쳤다. 1990년대 초반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집값은 잘 건지면 절반에서 5분의 1 수준까지 토막이 났다.

지금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의 장기불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최근 들어 부동산 하락세가 주춤하면서 경기도 살아나고 있다. 재개발이 두드러지고 있는 도쿄 도심 1급지를 중심으로 용지난이 발생해 ‘미니 버블’의 우려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일본 정부는 주택에 거품이 끼지 않도록 경기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금리정책에서 그렇다. 망국적인 부동산 폭등이 계속되자 금리 인상과 대출총량제를 도입하는 등 뒤늦게 고강도 대책을 내놓았다. 부동산 연착륙에 실패해 장기 불황의 계기를 제공했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백약이 무효인 중국=중국 정부는 지난해 5월 부동산 거래 실명제와 미등기 전매 금지, 2년 이내 전매 때 양도소득세 부과를 골자로 한 1차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잠시 주춤하던 부동산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올해 5월부터 8월까지 융단 폭격을 하듯 대책을 쏟아 냈다.

사상 처음으로 미분양 비율을 공개했다. 베이징(北京)의 미분양 비율은 무려 59∼65%. 그래도 주택 값은 내려가지 않았다. 양도세 부과 기간을 2년 이내 매매에서 5년 이내 매매로 늘리고 신축 아파트는 70%를 국민주택 규모(90m²) 이하로 짓도록 했다. 또 부동산 담보 대출을 억제하고 대출금리를 대폭 높였다. 심지어 건설업자의 이윤율도 공개했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였다. 13일 신화(新華)통신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전국 70대 도시의 부동산 가격은 평균 6.6% 올랐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