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틀러 대표-김종훈 대표 싸우다가 정들었나

  • 입력 2006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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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잠바에 청바지, 등산화를 신은 50대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호텔에 들어섰다. 야구 모자까지 푹 눌러 써 간신히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26일 오후 6시 반경 제주 서귀포시 신라호텔 로비에서 그와 마주쳤다. 김종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 측 수석 협상대표였다.

낯선 차림을 한 이유를 물었더니 김 대표는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와 산책 다녀오는 길”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원래 한라산에 가려고 했는데 날씨도 안 좋고 가파른 데는 싫다고 해서 근처 녹차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제주도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더니 어제부터 ‘언제 가느냐’고 재촉하더군요.”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나 할까. 협상 테이블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날을 세우는 두 사람이지만 4차 협상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공식 석상에서의 ‘날선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 줬다.

김 대표는 “제주도의 풍광과 시위에 대비하는 경찰들의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일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5일 밤에도 따로 만났다. 김 대표는 “서로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했다”며 “나도 ‘요새는 가끔 피가 마르는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26일 낮 커틀러 대표가 협상장 부근 중문초등학교를 찾은 것도 이 만남이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김 대표가 “나이가 더 들면 마음 편하게 바닷가에 있는 초등학교 교장이나 교감을 하고 싶다”고 하자 다음 날 커틀러 대표가 “미국에 있는 아들(7세)이 보고 싶어졌다”며 예정에 없이 초등학교를 방문했다는 것.

‘싸우면서 정든’ 두 사람이 남은 일정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서귀포=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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