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돈 미끼 “수수료 내라” 부동산 사기 전국 기승

  • 입력 2005년 8월 1일 03시 10분


코멘트
대구 동구 동호동에서 숯불갈비 식당을 하는 정모(46·여) 씨는 수년간 장사가 신통치 않자 최근 업종을 바꾸기로 했다.

임대기간이 남아 있는 만큼 주인의 허락을 얻어 생활정보지에 식당(36평)을 전세 1억 원에 내놓았다. 하루쯤 지났을까. 40대 중후반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A부동산 컨설팅업체 직원입니다. 광고를 봤는데 내놓은 것보다 좋은 조건에 식당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남자는 “전세 희망자가 외지에 있어 시세를 모르겠다며 ‘시세감정서’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서류 발급에 36만 원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정 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돈을 송금했다. 하지만 이 남자의 요구는 그칠 줄을 몰랐다.

감정서 발급 비용 135만 원, 공탁금 220만 원, 부동산관리 존속 계약서 발급 비용 220만 원, 손해공제보험납입 증명서 발급 비용 400만 원….

정 씨는 8종의 서류 수수료로 모두 1811만 원을 보냈으나 연락이 끊기자 경찰에 신고했다.

이처럼 부동산 중개업자를 가장한 수수료 사기가 전국적으로 극성이다. 생활정보지나 인터넷에 매물을 내놨다 돈을 날렸다는 신고가 전국 경찰서마다 1개월에 3, 4건씩 접수되고 있고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 등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전화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장사가 안 돼 임대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식당 등 점포를 내놓는 경우가 많아 시세보다 많이 준다는 말에 넘어가는 피해자가 늘고 있다.

대전 서구에서 K식당을 운영하는 서모(55) 씨도 가게를 정리하기 위해 생활광고지에 전세 광고를 낸 지 5일 만에 전화를 받았다.

“서울 H부동산 이 부장인데요. 내놓은 금액 3500만 원보다 2000만 원 더 주겠다는 인수자가 나타나서요.”

문제의 ‘이 부장’은 1주일 만에 전화를 다시 걸어 “공신력 있는 기관의 ‘시세평가서’가 필요하다”며 B부동산협회를 소개했다.

서 씨는 B부동산협회에 수수료로 30만 원을 보낸 뒤 다음 날 확인 전화를 했지만 협회 측은 “언제 돈을 보냈느냐”고 발뺌했다.

울산 중구의 이모(44) 씨는 4월 중순 모 은행과 국내 유명 부동산 전문 사이트 등 2곳에 32평 아파트를 1억2000만 원에 내놨다.

이틀 만에 부동산 컨설팅 회사라는 이름으로 3, 4곳에서 전화를 걸어와 “서울 사람이 부동산 경기가 좋은 울산에 아파트를 사두려 한다. 2000만 원은 더 받을 수 있으니 팔리면 복비나 두둑이 달라”고 했다.

이 중 한 부동산 컨설팅 회사는 불과 몇 시간 만에 다시 전화를 걸어 “구매자 설득을 위해 ‘시세감정평가서’가 필요하다”며 C감정평가사사무소를 소개했다.

이 씨는 “C감정평가사에 전화했더니 평가서 발급 수수료로 65만 원을 요구했다”며 “같은 수법 피해자가 때마침 주변에 없었다면 고스란히 돈을 날릴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일부 피해자들은 “관할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사실상 수사가 어렵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 양소순(梁昭順) 홍보실장은 “시세감정서 등 각종 명목의 서류는 부동산 거래에 전혀 필요가 없다”며 “타지 부동산중개업소라며 전화를 걸어와 좋은 조건을 제시하거나 서류 발급 및 수수료 등을 요구하면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