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파업]손놓은 협상… 항공대란 장기화 조짐

  • 입력 2005년 7월 20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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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콜센터… 한가한 조종사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파업이 사흘째로 접어든 19일 국제선 운항에도 차질이 빚어지자 서울 강서구 오쇠동 콜센터 직원들이 빗발치는 전화를 받느라 분주하다(왼쪽). 조종사들은 같은 시간에 인천 중구 운서동 인천연수원에서 운동을 즐겼다. 원대연 기자
분주한 콜센터… 한가한 조종사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파업이 사흘째로 접어든 19일 국제선 운항에도 차질이 빚어지자 서울 강서구 오쇠동 콜센터 직원들이 빗발치는 전화를 받느라 분주하다(왼쪽). 조종사들은 같은 시간에 인천 중구 운서동 인천연수원에서 운동을 즐겼다. 원대연 기자
19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이 사흘째로 접어들면서 전자제품 수출이 중단되는 등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이날 국제선 운항은 당분간 유지하겠지만 화물기 운항은 중단한다고 밝혀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추가 피해와 대외 신인도 하락까지 우려된다.

노사 양측은 이날 협상테이블에 마주앉지 않는 등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했다.

그러나 일부 조종사 노조원은 노조를 탈퇴하고, 업무에 복귀했다.

▽피해상황=아시아나항공 윤병인(尹炳仁) 안전담당 부사장은 이날 “하루 110∼117편 운항하는 국제선은 불가피하게 스케줄이 변경되는 경우를 빼고는 일주일간 전편을 운항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물기 운항은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수출 제품을 외국에 보내는 국제화물기는 모두 취소됐다.

액정표시장치(LCD)와 휴대전화, 반도체 230t을 싣고 미국과 홍콩으로 가려던 국제 화물기 3편의 운항이 모두 취소됐다.

아시아나항공은 파업이 장기화되면 일주일에 160억 원, 한 달에 700억 원가량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산했다. 수출업체가 입을 손실은 하루 1700억 원으로 예상했다.

또 이날 국내선 163편 중 김포∼제주 79편, 김포∼부산 1편, 인천∼부산 3편, 김포∼울산 2편 등 85편만 운항해 광주, 울산 등 지방의 하늘길이 막혔다.

특히 인천발 시드니행 OZ601편이 국제선 중 처음으로 결항됐다. 이 비행기를 예약한 60여 명의 승객들은 일본 나리타공항 등을 경유해 다른 항공편으로 출국했다.

아시아나 측은 20일 국내노선 169편 중 80편은 결항되지만 제주 노선은 전편 운항하고 김포∼부산 1편과 인천∼부산 2편, 인천∼제주 1편이 운항될 예정이라고 19일 밝혔다.

▽조종사 노조 탈퇴=노조가 실질적인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하자 조종사 노조원 일부가 노조를 탈퇴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19일 조종사 노조원 6명이 조합을 탈퇴하는 등 파업 이후 지금까지 17명이 노조를 탈퇴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원이 당초 527명에서 510명으로 줄었으며 이 중 150여 명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노조원 중 50여 명만이 조종간을 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승객 불만=이날 항공사에는 예약 상황을 확인하려는 승객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특히 국제선 항공편이 결항되는 등 ‘항공대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인천국제공항에는 “돌아오는 항공편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초조해하는 승객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날 태국으로 출국해 일요일 아시아나항공편으로 귀국할 예정인 이영태(38) 씨는 “혹시 파업이 장기화돼서 비행기를 못 타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결항 사실을 휴대전화로 통보받지 못한 승객들의 불만도 높았다.

이날 저녁 호주로 출발할 예정이었던 칠레 교민 윤모(42) 씨는 “결항이 걱정돼 17일 항공사에 전화했더니 ‘별 지장이 없다’고 했다가 18일에는 다시 ‘결항됐다’고 말을 바꿨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승객 안전위해 파업한다며 음주검사 말라니…▼

“비행할 때 영어 잘못하면 승객의 안전과 직결되는데 영어시험 안 보게 해 달라는 게 말이 되는가.”

“토익 630점 받기 힘들어서 그런 요구를 하나. 창피하다.”

“음주 및 약물측정을 거부하겠다는 말은 또 뭔가.”

아시아나항공의 사내 커뮤니티 ‘텔레피아’의 ‘나의 제안’에 올라온 글들이다. ‘나의 제안’은 아시아나항공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이용하는 일종의 자유게시판.

파업이 시작된 뒤 18일에는 450건, 19일 오전에도 200여 건의 글이 올라왔다. 조종사 노조의 파업을 비난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특히 사회 통념을 벗어난 조종사 노조의 일부 요구에 격분한 직원이 많다.

조종사 노조의 78가지 요구사항 가운데는 ‘현행 영어자격지침 무효(승격할 때 토익 630점 이상)’와 ‘알코올 및 약물검사를 사고 후, 임무 후로 제한’ ‘탑승권 없이 조종실 탑승’ 같은 것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노조 측 이학주 대변인은 “관제영어시험이면 몰라도 생활영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면서 수시 음주검사 거부에 대해서도 “조종사를 용의자 선상에 놓고 보는 기분 나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토익 630점 이상은 아시아나항공 모든 직원의 진급 필수조건 가운데 하나. 비행 전 음주검사와 조종실 출입 통제도 승객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노조 측은 “핵심 쟁점은 아니다”고 하지만 “승객의 안전을 위해 파업한다”는 대의명분이 무색한 요구사항들이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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