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정환]피해보전 대책 마련후 FTA 체결을

  • 입력 2005년 4월 26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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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개방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막상 그로 인한 희생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다. 피해 당사자들이 느낄 두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상세한 정보 제공과 명확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진은 서울 가락동 청과시장에 쌓여 있는 칠레산 수입포도 상자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시장개방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막상 그로 인한 희생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다. 피해 당사자들이 느낄 두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상세한 정보 제공과 명확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진은 서울 가락동 청과시장에 쌓여 있는 칠레산 수입포도 상자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아일랜드나 네덜란드는 과감한 시장개방으로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다. 정부는 이들 국가 같은 ‘선진통상국가’를 한국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거대 경제권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둘러 수년 내에 20여 개국 이상과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욕적인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개방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시장개방에 대한 이해 그룹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개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국민 대다수가 공감한다. 그러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과 손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다. 시장개방이 국가적으로 필요하다거나 어느 나라는 시장개방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만으로는 피해 당사자들을 설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희생을 요구하는 것으로 인식돼 도리어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 당사자들이 알고 싶은 것은 ‘개방으로 내가 얼마나 피해를 보게 되고 그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하는 점이다.

그런데 피해 당사자는 개방의 피해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두려움의 거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협상의 내용과 그 영향에 대해 상세히 알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식적인 토론회 등보다는 비공식적인 소규모의 다양한 채널을 통한 중층적이고 반복적인 논의와 협의가 효과적이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조직과 시스템을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

다음은 그 산업에 치명적 영향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협상안과 그에 따른 국내 대책을 이해당사자들에게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정책지원이 국내 대책의 중심을 이뤄왔다. 그러나 정부주도로 산업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앞으로 정부의 역할은 정보제공, 위험관리, 금융시장 시스템 등 산업 인프라를 정비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농업부문의 지원대책은 시장개방으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 그 중 일부를 생산 농가에 직접 보전해 농가소득의 급격한 하락을 방지하는 ‘소득보전 직불제도’가 중심이 돼야 하고, 다른 산업부문의 대책은 전직을 위한 교육과 실직보험 지원에 중점을 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소득보전이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하나다.

한편 피해 당사자들은 정부에 대한 요구조건을 분명히 해 협상안과 피해대책 수립에 참여토록 해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각 업계가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정부는 그것을 취합하고 조정해 협상안과 대책을 만들지만 우리나라의 업계는 그런 경험과 역량이 부족해 합리적 요구조건을 취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이상과 같은 갈등 극복 방안에 합의할 수 있어야 시장개방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고, 그래야 선진통상국가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정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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