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기아車노조 계약직채용비리 파문

  • 입력 2005년 1월 20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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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00여 명의 생산계약직 근로자를 뽑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채용비리 의혹’으로 광주공장장 등이 퇴직하고 노조 간부의 채용 사례금 수수와 관련해 노조 집행부 200여 명이 전원 사퇴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채용비리 의혹은 지난해 7월 근로자 채용 이후 노조 홈페이지 등을 통해 꾸준히 제기돼 온 터여서 노조 간부에 대한 검찰 수사로 채용비리 전모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부적격자 채용=기아차 광주공장은 스포티지 생산공장 라인 증설에 따라 지난해 5월 21일부터 7월 8일까지 3차례 걸쳐 1079명의 생산계약직 근로자를 서류전형, 면접, 신체검사를 거쳐 채용했다. 당시 채용에는 무려 8000여 명이 몰려 7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

기아차 노사는 지난해 5월 채용에 앞서 ‘채용된 생산계약직 근로자들을 6개월간 계약직으로 근무토록 한 뒤 올해 1월 1일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근로자 가운데 450여 명이 ‘30세 미만, 고졸 이상’의 채용기준을 어기고 입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들 중 일부가 돈을 주고 입사했다‘는 채용 비리설이 급속하게 번졌다.

회사 측은 입사 비리와 관련한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2개월 미루려고 했으나 노조는 노사합의 파기라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연초부터 노사갈등이 불거지고 채용비리설이 알려지면 회사 이미지가 손상될 것을 우려해 이들 전원에 대해 1월 3일자로 정규직 발령을 냈다.

▽채용비리 수사=광주지검 강력부는 기아차 광주공장의 생산계약직 채용과 관련해 노조 간부 A 씨가 동생의 통장을 통해 8명에게서 1억2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보고 관련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A 씨의 동생 통장에서 1억2000여만 원이 지난해 7월 A 씨 부인 명의의 증권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노조 간부의 개인비리로 노조가 금품수수에 개입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아차 광주공장 직원들은 “사건이 불거지기 전부터 ‘근로자 채용 시 회사가 노조 간부에게 몇 명씩 추천권을 주며, 노조 간부들은 이를 이용해 채용장사를 한다’는 등의 채용비리설이 나돌았다”고 말했다.

한 노조원은 노조 홈페이지에 “지난해 채용한 신입사원 1079명 가운데 거의 90%가 입사비리에 연루된 것 같다. 1인당 3000만 원씩 썼다고 보면 200억∼300억 원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지금이라도 정중히 돌려주고 사죄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최근 노조는 부적격자 채용을 둘러싸고 일부 노조원들이 집행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기준위반자 450명을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노-노(勞-勞) 갈등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450명의 기준위반자들이 모두 비리에 연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중요한 것은 금품수수 등의 행위가 있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차는 현재 노조 간부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일단 사태 추이를 지켜본 뒤 회사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노조 집행부 총사퇴=기아차 노조는 검찰수사 소식이 전해진 19일 밤 경기 광명시 소하리 공장에서 긴급회의를 열었으며 박홍귀(朴弘貴) 노조위원장은 20일 성명을 통해 “수사 결과에 상관없이 집행간부가 총사퇴한다. 이 길만이 조합원의 분노와 실망에 사죄하고 용서받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건이 터진 기아차 광주공장은 20일 온종일 침통한 분위기였다. 간부 2명이 퇴직하고 실무자 4명이 보직 해임된 데 이어 노조 간부가 검찰조사를 받게 되자 근로자들은 일손을 잡지 못했다.

광주공장 임원진도 이날 오전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사안이 워낙 중대한 데다 이렇다 할 대응수단도 없어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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