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11월 24일 17시 38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2002년 취임 7년째를 맞은 구본무(具本茂) LG그룹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전 임직원에게 비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지금은 1등이 아닌 기업은 인정해 주지 않는다. 경영환경이 어려울수록 1등 기업은 오히려 진가(眞價)를 발휘한다. 발상과 태도를 송두리째 바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승부해야 한다.”
구 회장은 당시 10분 남짓 짤막한 신년사에서 ‘1등’이라는 단어를 무려 13번이나 사용했다.
![]() |
한꺼번에 몰아친 최악의 시련 때문이었다. LG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정부의 ‘빅딜’에 따라 반도체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비동기 IMT2000 사업권 탈락, 데이콤의 위성방송사업자 선정 탈락, LG생명과학이 개발한 항균제 ‘팩티브’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승인 보류판정 등 그룹의 사활을 걸고 추진해 온 미래 사업이 줄줄이 좌초했다. 시중에는 ‘LG 위기설’까지 떠돌았다.
구 회장은 “그만큼 우리의 ‘내공’이 약한 게 아니냐”며 이를 악물었다.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그룹 체질개선에 나섰다. 수익성과 현금창출 능력을 경영의 최우선 목표로 정했다. ‘1등 LG’는 이런 과정을 통해 구체화됐다.
▽무난하기만 한 사람은 필요 없다=내년 초로 예정된 GS그룹과의 법적인 계열 분리를 계기로 LG의 체질 개선은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올해 4월 1일 현재 LG의 재계순위는 공기업을 제외하고 2위이다. 자산총액 61조6480억원으로 3위 현대자동차그룹(52조345)에 바짝 추격당하고 있다. 더구나 자산규모 16조원의 GS그룹이 떨어져 나가면 ‘2위 수성’이 어려울 수도 있다.
LG가 올해 들어 부쩍 직원들의 ‘승부근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5년, 10년 후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판단이다.
LG전자는 최근 내부적으로 ‘독종’으로 평가받는 직원들의 행동 특성을 따로 조사해 신입사원 채용 때 적용할 인성·적성검사 항목을 새로 만들었다.
‘라이트 피플(Right People) 선택 프로세스’로 명명된 이 검사 항목은 ‘당신은 주어진 목표 달성을 위해 며칠 밤을 새울 수 있나’ 등 100개 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김쌍수(金雙秀) LG전자 부회장은 11월 사보(社報) 기고문을 통해 “성격이 무난하고 회사에 잘 적응할 것 같은 사람을 뽑는 관행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도 올해 들어 국내외 핵심사업 현장을 16차례에 걸쳐 직접 방문해 현장경영을 역대 어느 해보다 강화했다.
▽실적으로 말한다=LG의 체질개선은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룹의 쌍두마차인 LG전자와 LG화학은 올해 3·4분기(7∼9월)에 나란히 사상 최대의 분기 매출을 달성했다. 또 그동안 부진을 거듭하던 통신사업 부문의 경영성과도 기대 이상이라고 LG측은 설명한다.
해외 언론의 ‘찬사’도 잇따르고 있다. 특히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 6월 LG전자의 경영혁신 사례 등을 6페이지에 걸쳐 소개하면서 이 회사를 전자업계 ‘차세대 리더’로 평가했다.
덕분에 구 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 동관 30층의 분위기도 올해는 다소 달라졌다.
자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최근 이곳에서 1년 전 약속했던 성과 목표와 실제 성적표를 점검받았다. 면담 결과는 연말 인사에도 반영될 예정이다.
▽‘1등 LG’ 전략의 그늘도 경계해야=금융감독원에 따르면 LG의 유형자산 취득액은 올해 상반기 2조8822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62.7%나 급증했다. 이는 10대 그룹 가운데 최고의 증가율로 그만큼 투자가 많았다는 뜻이다.
LG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최근 그룹의 양대 주력사업인 전자와 화학 부문에 앞으로 5년간 50조원 규모의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해 다른 기업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LG의 이런 움직임을 다소 걱정스럽게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LG카드 사태’를 떠올리며 지나친 성과주의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사람도 있다.
‘다걸기(올인)’로까지 비치는 중국 사업에 대해서는 중국 업체의 급속한 추격 및 위안화 평가절상 움직임 등의 악재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SK텔레콤과 KT 위주로 통신시장이 급속히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LG텔레콤이 설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데이콤이 사운을 걸고 추진하는 두루넷 인수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LG그룹의 사운(社運)을 가름할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이에 대해 LG그룹은 최근 LG전자와 일본 마쓰시타의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특허 분쟁에서 보여줬듯 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외부의 도전과 위기를 정면 돌파한다는 각오다. 그만한 기술력을 갖췄다는 설명이다.
![]() |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CEO들 직접 스카우트“인재가 맘껏 뛰어놀수 있게 만들자”▼
![]() |
“꼭 하고 싶은 것 한 가지만 얘기해 보세요.”
2001년 4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새로 임명한 노기호(盧岐鎬) LG화학 사장을 따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노 사장은 즉시 “인재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직장을 만들겠다”고 답변했다.
그로부터 4년. 노 사장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한국의 ‘하향 평등주의 문화’를 타파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사무·기술직을 중심으로 철저한 성과주의를 도입했고 이 결과 같은 해에 입사한 동기라도 연봉 격차가 최고 30%에 이르렀다. ‘인재 확보’ 못지않게 ‘핵심인재 관리’가 그룹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LG그룹이 부쩍 관심을 기울이는 ‘인재 경영’은 ‘확보와 관리’, 두 축을 중심으로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인재 확보는 구 회장이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그는 올해 8월 사내(社內)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전략회의’에서 국적, 연봉, 형식을 파괴한 인재 확보를 강조했다. 이어 이달 들어 자회사 CEO들의 연말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는 각사의 핵심인재 확보 전략을 직접 점검하고 있다.
핵심인재의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과 파격적인 보상제도도 잇따르고 있다. LG화학은 입사 후 초기 3개월간의 교육이 핵심인재 유지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판단 아래 후견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탁월한 성과를 올린 핵심인재에게는 금전적인 보상은 물론이고 진급 연한에 관계없이 발탁인사를 하고 있다.
기존 직원들의 ‘핵심인재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LG는 미래 경영 및 해외사업을 책임질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과장∼부장급 인재들을 대상으로 2개의 정식 경영학석사(MBA)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 재무, 인사부문의 핵심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해외 유수 대학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장기간에 걸친 특화 교육도 시행 중이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