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기정/초등생도 알고있는 '기업윤리'

  • 입력 2003년 11월 18일 18시 30분


코멘트
지난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청소년 경제교육이 열렸다. 국제 비영리 교육재단인 ‘주니어 어치브먼트(JA)’의 한국 지부가 주최했다.

경제교육 하면 떠오르는 주제는 ‘돈’이다. 하지만 이날 강의는 ‘공동체’에 관한 것이었다. 경제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공동체의 작동 원리를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이 가상의 ‘도넛 가게’를 차렸다. 기업 운영 실습이었다. 재료를 사다가 도넛을 굽고 이를 팔았다. 도넛 생산 방법과 판매 기법은 제각각이었지만 저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더 높은 수익을 올리려 애썼다. 비정상적인 상술(商術)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어진 경제 원리 소개. 양쪽이 힘을 모아 줄을 잡아당기는 줄다리기 경기가 화면에 떴다. 자원봉사를 나온 일일교사는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역시 갖가지 방법론이 제시됐다. 그러나 ‘상대편 사람을 빼 온다’,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등 교사가 준비한 ‘예상 답변’은 없었다. 대신 ‘경쟁과 협력’이라는 공동체의 건강한 작동 원리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그러나 경제현실은 어떤가. 최근 정치권의 불법 선거자금과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을 겨냥한 검찰의 칼날이 매섭다. 대기업 총수가 출국금지 당하는 수모를 겪고 내로라하는 전문 경영인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정치인들은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기업에 돈을 요구한 것 같다. 기업을 정치권의 ‘개인금고’쯤으로 생각하는 관행이 또 확인됐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거듭나려는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기업들은 ‘돈 주고 뺨 맞는다’며 하소연한다. 한국적 현실에서 이해가 되는 대목도 있다. 실제로 먼저 나서서 돈을 주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앞뒤 재보고 득실을 따진 뒤 못이기는 체 비자금을 건넸으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치지 않기 위해. 한발 더 나아가 ‘반대급부’를 노려 기업들이 정치권과 ‘부적절한 거래’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앵무새처럼 반복돼 온 ‘해명’도 이제 썩 마뜩치는 않다.

청소년 경제교육에서는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추구’라는 점이 강조됐다. 이윤을 둘러싼 게임의 룰은 공정한 경쟁이다. 또 기업은 개인 및 정부와 함께 사회라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한 축으로 모두가 함께 가꿔야 할 공동의 자산으로 소개됐다.

이게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성격과 역할이다. 이번 기회에 어른들도 한번 곱씹어 봤으면 좋겠다.

고기정 경제부기자 ko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