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현오석/외자유치 구심점이 없다

  • 입력 2003년 9월 28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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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석 무역연구소 소장 기차가 곡선코스를 달릴 때 탈선하지 않는 것은 원심력과 구심력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경제가 정상궤도를 달리려면 두 힘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지금 한국경제의 구심력은 너무 약하다. 한편에서는 이민 상품에 인파가 몰리고, 기업마저 앞 다퉈 해외로 빠져나가 산업공동화가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마치 한국판 엑소더스가 시작된 느낌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직접투자수지는 7억달러 적자였다. 우리가 유치한 외국자본보다 외국으로 빠져나간 투자액이 더 컸다. 금년에도 상반기에만 7억6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경제발전 단계에 맞지 않는 노동집약 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산업구조의 고도화라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반도체 자동차 철강 첨단가전 등 핵심 제조업에서 일고 있는 해외투자 바람은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가 6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제조업체 중 26%는 이미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겼고, 48%는 이전을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것은 시장개척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해외투자는 전투적인 노조, 정부규제, 고임금 고지가(高地價), 기업을 죄인시하는 사회 분위기 등 우리나라의 반 기업 정서에 의한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산업공동화가 현실화할 경우를 생각해 보라. 기업이 떠난 이 땅에서 정부는 누구로부터 세금을 거둘 것이며, 근로자는 어디에 취업할 것인가.

이제 한국경제는 요소 투입형 성장에서 생산성 주도의 성장으로 옮겨가는 전환점을 맞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제조창’으로 급부상한 지금 우리는 가격과 물량이 아니라 생산성과 품질을 바탕으로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 산업을 창출하고 핵심 기능의 국내 산업기반을 유지하는 한편, 산업의 첨단화를 이뤄야 한다.

이 점에서 외국인 투자 유치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외자 유치를 단순히 구조조정의 수단 정도로만 인식해 온 감이 있으나, 지금처럼 산업구조 개편이 시급할 때는 우리 산업의 질적 도약이라는 화학적 변화를 가속화할 촉매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세계 초일류 기업들로부터 기술 경영기법 기업윤리 글로벌스탠더드 등 선진 소프트웨어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우리 기업들의 빈자리를 첨단 외국기업들로 채우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외자유치를 진두지휘해야 한다. 가령 기업에서 전사적 품질관리(TQM)를 ‘PDCA’ 방식으로 하듯이 외자유치를 계획(Plan)하고, 행동(Do)하고, 점검(Check)한 뒤 잘못된 점을 고쳐 다시 행동(Action)에 나서야 한다.

지금의 경기침체나 제조업 공동화 문제는 경기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신 성장동력 창출이 미진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구조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90년대 초부터 산업구조 고도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 왔지만 일시적으로 경기가 좋아지면 망각하고 마는 우를 계속 범해 왔다. 기업경영환경 개선과 함께 선진외국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현오석 무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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