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기업인들 "새정부에 바란다"]긴급 좌담회

  • 입력 2003년 1월 15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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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내놓은 경제개혁 방안에 대해 인수위와 재계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등 이른바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본보는 재벌개혁, 노사문제,한국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 동북아 경제중심지 계획 등 최근의 경제 현안을 주제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기업인 4명을 초청, 의견을 정리했다. 좌담은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진행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내놓은 경제개혁 방안에 대해 인수위와 재계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등 이른바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본보는 재벌개혁, 노사문제, 한국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 동북아 경제중심지 계획 등 최근의 경제 현안을 주제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기업인 4명을 초청, 의견을 정리했다. 좌담은 15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경제부 반병희 차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대기업의 구조조정본부 해체 및 금융계열사 분리 등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측의 ‘재벌개혁’ 방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때로는 내부에서 정리되지 않은 개인적 견해도 흘러나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데….

▽태미 오버비 수석부회장=지금 외국인투자자는 매우 불안하다. 노 당선자가 아직 명확한 집권 청사진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예기치 못한 변화이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다보면 새로운 규제가 갑자기 만들어져 외국인투자자가 당황해하는 경우가 많다. 개혁은 중요하다. 그러나 급격하고 성급하게 추진되는 개혁은 위험하다. 개혁은 모름지기 천천히,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조지프 데이 지사장=외국인투자자가 바라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정책의 일관성, 투명성, 예측가능성이다.

▽조 매닉스 지점장=그렇다고 개혁이 너무 늘어지게 되면 힘을 잃고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개혁을 추진하는 데 적정한 기간은 설정돼야 한다고 본다. 다만 완급 조절이 중요하다. 너무 빠르지 않게, 너무 늘어지지 않게, 이것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량이라고 본다.

▽사회=최근 노 당선자측과 재계는 한때 위험한 수준으로까지 갈등을 빚었다. 상대방의 주장을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카스기 노부야 회장=갑작스러운 변화에 한국민들도 적응하기 쉽지 않을 텐데 외국기업인들이 느낄 불안감을 상상해 보라. 이런 점에서 최근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재벌 기업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점은 대단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데이=외국인투자자가 왜 한국에 오겠는가. 과거 외국기업은 한국을 단순한 저임금의 수출 기지로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 시장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내에서 편을 갈라서 싸우는 듯한 인상을 준다면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끼겠는가.

▽오버비=국제시장은 노 당선자와 재벌간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재벌기업들은 지배구조 개선작업을 계속 진행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차기 정부가 이 문제 때문에 기업을 공격하는 것처럼 비치면 외자 유치에 나쁜 영향만 줄 뿐이다. 정부와 재벌간의 싸움이 한국의 국가신인도를 높이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사회=북핵과 촛불시위 등 반미(反美) 감정에 대해 걱정하는 견해도 많다.

▽매닉스=최근 미국을 다녀왔는데 친구들에게서 “도대체 한국은 어떤 곳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과격시위 등 미국 언론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핵 위기에 반미감정까지 겹치면서 한국은 신용등급 하락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다카스기=한국에 살면서 느낀 건데 한국인들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절하지만 단체 행동을 할 때는 감정적이다. 최근의 반미 감정은 단지 반미뿐 아니라 반외국인 정서가 한꺼번에 녹아 있다. 이런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성은 신용평가기관들이 신용등급을 조정할 때 고려하는 ‘국가 위험(country risk)’ 요소에 해당한다. 한국의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데이=한국인들이 단순히 미국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오버비=개인적으로는 한국인들의 촛불시위를 지지한다. 민주주의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감정은 ‘반미(Anti-American)’라기보다는 ‘친한(Pro-Korean)’ 정서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러나 일부 한국인들이 성조기를 찢고 불태우는 것은 매우 위험한 메시지를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것이다. TV를 통해 우방 국가에서 자신의 나라 국기가 불태워지는 것을 보는 미국인들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이런 과격한 행동 때문에 미국 내에서 반한(反韓) 감정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노 당선자측은 파견근무제 및 비정규직 제한 등을 포함해 경우에 따라 극단적인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 취임 후 노사관계는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매닉스=한국에서 사업을 하다보면 노동 문제가 최대 관심사이다. 최근 비정규직 동일임금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임시직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것은 공평성 차원에서 옳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비정규직 직원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제공한다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단기간 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오버비=비정규직 임금 문제를 얘기하기에 앞서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왜 기업들이 정식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임시직만 늘려나가겠는가.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다보니 인력 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기업의 수익이 높아지면 직원도 돈을 많이 벌게 된다. 반면 한국의 노조는 너무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시위를 극소수의 지도부가 주도한다. 나머지는 주요 쟁점도 정확히 모른 채 그냥 따라간다. 1970년대 영국의 상황도 현재의 한국과 비슷했다. 그러나 노조 활동에 대해 정확한 책임을 묻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노조 활동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자 시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다카스기=한국 노조는 종종 일본 미국 유럽 등지의 노동자와 비교하며 자신의 임금이 낮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말을 하기에 앞서 자신의 노동생산성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 근로자의 노동생산성은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반면 중국은 매우 높다.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중국을 이기기 힘들다.

▽오버비=맞다. 생산성은 오르지 않는데 임금만 자꾸 오른다면 기업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딱 한가지뿐이다. 한국을 떠나는 것이다.

▽사회=노 당선자는 한국을 동북아 경제 중심지(허브)로 키우겠다는 생각이다. 선결 과제는….

▽매닉스=한국은 인프라가 잘 마련돼 있고 비용 경쟁력면에서도 동북아 허브 계획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리적으로 동북아 한가운데에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육해공 모두 인프라가 갖춰졌다.

▽다카스기=긍정적인 점을 덧붙인다면 높은 교육열, 잘 갖춰진 통신망과 수송망, 활발한 소비시장 등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도 분명히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한참 뒤진다. 이 두 나라 뒤에는 거대한 시장이 존재한다. 홍콩 뒤에는 중국이, 싱가포르는 동남아 지역이 뒷받침해 준다. 한국은 이런 ‘배후 시장’이 없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영어 실력이 크게 뒤지며 국가 이미지도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다.

▽매닉스=유나이티드항공사는 6월부터 서울∼샌프란시스코 직항 노선을 개항하기로 했다. 지금과 같이 경제가 좋지 않은 때 미국 항공회사가 직항 노선을 새로 열기로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 경제와 동북아 허브 계획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동북아 허브 계획에는 찬성하지만 이 계획의 일환으로 외국기업 전용 자유무역지대가 따로 조성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외국인투자자들은 특별 대우를 원치 않는다. 전용지역에 외국기업들은 모아놓으면 노조의 타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유무역지대는 개도국에서 주로 만드는 것으로 한국의 경제 규모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국적 기업들의 지역 본부를 이곳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를 위해 정부규제를 최소화하고 법률적으로 안정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버비=궁극적으로 한국 전체가 자유무역지대가 돼야 한다는 데는 찬성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반대 의견이 아직 많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우선 특정 지역에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려는 것으로 본다.

▽매닉스=한국인들이 외국 기업에 대해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또 차기 정부는 외국 기업에 말로만이 아닌 진심으로 사업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정리〓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사회=반병희 경제부차장▼

▼좌담 참석자 프로필▼

태미 오버비

△미국 출생

△미국 아칸소대 졸업

△컨설팅회사 윌리엄 머서 이사,

AIG생명보험 한국지사 매니저

△1995년~주한미상공회의소(AMCHAM)수석 부회장

다카스기 노부야

△일본 출생

△1967년 일본 후지제록스 입사

△1999년~한국 후지제록스 회장 겸 서울재팬클럽(SJC)부이사장

조 매닉스

△미국 출생

△세인트존대 경영대학원 석사

△1972년 미국 유나이티드항공

△2001년~유나이티드항공 한국지점장 겸 AMCHAM 이사

조지프 데이

△영국 출생

△7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거주

△현재 영국 MES제약 한국 지사장 겸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제약위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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