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資기업 CEO들 경영혁신 바람…토종기업 "우리도 해볼까"

  • 입력 2002년 6월 6일 23시 33분


에릭 닐슨 회장(왼쪽), 제롬 스톰 회장
에릭 닐슨 회장(왼쪽), 제롬 스톰 회장
“한국 기업엔 거스 히딩크 감독 같은 외국인 최고경영자(CEO)가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최근 삼성 LG SK 현대차 등 대기업과 민간 경제연구소는 한국에 최초의 월드컵 승리를 안겨준 히딩크 감독의 경영전략을 진지하게 분석하고 있다.

벤치마킹 포인트는 3가지. 즉 △히딩크 감독은 연줄에 얽매이지 않았고 △선진축구의 흐름과 한국팀의 장단점을 잘 알았으며 △확신을 갖고 변화를 주도했으며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는 점 등이다.

이런 분석의 결과로 일부에서는 “한국 기업도 이제 외국인 CEO를 영입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업에 ‘히딩크 감독’이 출현하기 어려운 이유〓외국인 CEO가 온다면 한국 오너와의 관계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오너의 지시를 거부하는 등 마찰을 빚을 우려가 크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 관계자는 “그룹 회장과 구조조정본부가 계열사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한국 대기업에서는 외국인 CEO와 오너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업 내에 만연한 파벌주의와 관료주의도 장애. 모 그룹은 수년 전 일본인 기술자들을 고위 임원으로 대거 영입했지만 이들은 파벌싸움을 못 견뎌 1년 만에 모두 떠나고 말았다.

“한국 기업 내 파벌주의와 관료주의는 정당이나 공무원 사회에 못지않다. 회장의 강력한 지시로 영입한 외국인 임원도 ‘왕따’를 당해 떠나는 판에 외국인 CEO가 벽을 깨고 경영혁신에 나서기는 불가능에 가깝다.”(한국경제연구원 박승록 박사)

▽변화의 씨는 뿌려졌다〓현재 토종기업에는 외국인 CEO가 전무하다. 벤처도 마찬가지.

그러나 토종회사를 사들인 외자기업에는 성공적인 외국인 CEO가 등장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기계사업 부문을 사들여 짧은 기간에 우량회사로 탈바꿈시킨 볼보건설기계코리아의 토니 헬샴 전 사장(현재 본사 회장)과 에릭 닐슨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 르노삼성자동차의 제롬 스톨 사장도 삼성차를 성공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기업들도 이런 성공에 자극 받아 외국인을 주요 임원으로 영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1월 데이비드 스틸 미래전략그룹 소속 해외전략 고문을 상무보로 승진시켰다. 제일기획도 미국 광고업계에서 20년 동안 일한 스티브 슬롬을 해외광고 제작팀장으로 채용했다. 작년 말 현재 국내 상장기업의 등기이사 가운데 외국인은 163명으로 전체의 3.18%를 차지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5일 “국적을 불문하고 세계 각국의 인재를 등용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당장 외국인 CEO 영입은 어렵지만 이들이 삼성의 문화에 익숙하도록 만든 뒤 CEO로 키우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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