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전직원 눈물겨운 판촉…참이슬로 영롱한 재기"

  • 입력 2001년 10월 15일 21시 03분


”구조조정이 신나는 일은 아니죠. 기업은 확장하는 맛에 하는 법인데…“

진로가 부도를 낸뒤 진통 끝에 채권단의 동의를 얻어 화의(和議)를 시작한 것은 1998년 3월 19일.

돈 될 만한 자산은 있는 대로 팔고 비용은 혹독할만치 줄이는 일에 이력이 났건만 김선중(金宣中) 회장은 아직도 신나게 ‘몸집 부풀리기’를 하고 싶은 꿈 속으로 가끔 빠져든다.

화의(和議)기업의 최고경영자(CEO)인 김 회장이 ‘감히’ 이런 생각을 해볼수 있는 것은 ‘참이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진로가 참이슬을 내놓은 것은 1998년 10월 19일. 회사의 경영상황이 최악에 빠져있을 때다.

“부도를 내고 나자 갚을 돈은 쇄도하는데 받을 돈은 못받게 되더군요. 신제품을 내놓으려면 많은 광고판촉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을 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당시 진로는 모든 직원들이 몸으로 판촉활동에 나섰다. 관리직 사원들까지 퇴근 후에는 음식점과 술집을 찾아다니며 일을 거들어주곤 했다.

김 회장은 “공장에서는 사람이 아닌 기계가 몸살이 날만큼 열심히 일을 했다”며 “참이슬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에 매달렸지만 누구도 이처럼 히트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참이슬은 시장에 나온지 6개월만에 1억병이 팔렸다. 9개월째에는 2억병, 11개월째는 3억병이 판매됐다. 올해 9월까지 팔린 것을 모두 합하면 무려 25억병. 소주병을 한 줄로 누여 놓으면 지구를 13번 휘감을 수 있다고.

참이슬의 이같은 히트에 힘입어 진로의 시장점유율은 99년 38.0%에서 작년에는 51.4%로 높아졌다. 진로의 작년 경영성과는 화의기업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 매출액 8300억원에 870억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김 회장은 “올해는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서고 당기순이익도 작년보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로는 화의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 국제화에도 많은 노력을 쏟았다. 진로는 일본에 진출한지 20년만인 98년 희석식 소주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선 뒤 선두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일본시장은 평정했고 지금부터의 목표는 만리장성을 넘는 일입니다. 화의기업이라서 투자에 제약이 많지만 직원들이 자신감에 차있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회장은 어느 CEO에 비해서도 직원들을 믿고 자율에 맡겨두는 편. 그는 “큰 방향만 제시하고 직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치워주는 것이 CEO의 할 일”이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자율을 강조한다. 그러나 ‘게으른 경영자’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는 진로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는 사람중 한명. 그는 젊은 시절부터 하루에 4시간반 이상 자본 적이 드물다. 타고난 건강이 이런 성실함을 뒷받침한다.

김회장은 대주주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몸을 낮추는 스타일이다.

“저는 한번도 1인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1인자가 뜻을 펴도록 도와주는 것이 타고난 소임이라고 믿습니다. 독서를 할 때도 CEO론보다는 참모론에 관한 책을 즐겨 읽습니다.”

▲김선중 회장은 누구

▽1934년 서울 출생

▽1960년 산업은행 입행

▽1984년 증권감독원 부원장보

▽1990년 우신투자자문사장

▽1993년 진로 사장

▽1996년 진로그룹 기획조정실장(부회장)

▽1997년 진로 회장

▽취미: 역사서적 읽기

<천광암기자>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