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그룹 결합재무제표 공개]9곳 이익금으론 이자도 못갚아

  • 입력 2000년 8월 1일 19시 13분


▼재벌들의 현주소▼

1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16개 그룹의 99사업연도 결합재무제표에서는 기존의 단순합산재무제표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재벌의 현주소가 낱낱이 밝혀졌다.

절반이 넘는 기업이 영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부분 해외에서는 변변한 영업이익을 올리지 못하는 ‘우물안 개구리’ 신세였다. 4대그룹으로의 지나친 경제력 집중과 과도한 내부거래의 실상도 명백히 확인됐다.

▽장사해서 빚도 못 갚는다〓작년에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금으로 이자를 대지 못한 기업이 전체 16개사중 9개사에 달했다.

4대그룹 중에서는 현대의 이자보상배율이 0.91로 1에 못 미쳤다. 작년 한해 동안 갚아야 할 이자가 100원이었다면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91원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현대는 영업외수익까지 합쳐야만 경상이익 이자보상배율이 1.14가 돼 간신히 이자를 갚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금융부문에서 적자를 본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4대그룹 이외에는 한진, 쌍용, 한솔, 두산, 코오롱, 새한, 한라, 강원산업 등이 이자에 못 미치는 영업이익을 냈다. 특히 코오롱 한라 강원산업은 영업이익이 마이너스였다. 금감원은“이자보상배율이 1에 못 미친다고 해서 지급여력이 좋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자보상배율이 의미가 갖기 위해서는 3∼4년간의 추이를 살펴봐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1년 이내의 단기 지급여력을 나타내는 유동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100)은 4대그룹의 경우 전체평균 97.92%, 비금융업종만 보면 83%로 나타났다. 유동비율은 보통 100 이상일 때 양호한 것으로 간주된다. 현대는 유동비율이 70.55%로 한화(46.81%), 강원산업(62.41%), 새한(69.96%) 다음으로 낮았다.

▽우물 안 개구리〓재벌들은 국내에서는 그마나 쏠쏠한 재미를 본 반면 해외에서는 죽을 쑨 것으로 드러났다. 4대그룹의 매출액대비 영업이익률은 국내에서 5.1%임에 반해 해외에서는 1.7%에 불과했다. 16개 그룹 전체도 각각 5.0%, 1.6%로 비슷했다. 특히 롯데(―12.7%), 코오롱(―6.3%), 한솔(―2.8%), 한화(0.5%), LG(0.8%) 등이 낮았다.

삼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삼성은 국내 영업이익률이 6.4%로 4개그룹중 가장 높았으나 해외부문에서는 2.0%로 현대보다 낮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해외영업에서 대규모투자가 필요한 진출 초기단계에 있고 국내에서보다 경쟁이 치열한데다 계열사들의 판매 대행, 할부금융 등 지원업무에 주력해 마진 폭이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경제력 집중〓16개 기업집단의 총자산은 금융업을 포함해 419조원에 달했다. 이중 현대, 삼성, LG, SK 등 4대그룹의 총자산은 312조7000억원으로 74.6%를 차지했다. 이밖에 4대그룹은 △부채 비중 75.5%(243조1000억원) △자본 비중 71.8%(69조6000억원) △매출액 비중은 77.2%(241조2000억원)에 달했다.

4대그룹 중에선 현대의 몰락과 삼성 LG의 부상이 눈에 띄었다. 16개그룹의 당기순이익은 7조5000억원. 이중 삼성과 LG가 각각 2조9000억원, 2조7000억원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했다. 특히 삼성은 자본규모에서 현대에 뒤졌으나 자산 부채 매출액 등에서 현대를 앞질렀다. 영업이익률 경상이익률 당기순이익률 등 이익지표 면에서 현격한 격차를 보였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주가에 미칠 영향▼

결합재무제표 발표로 국내 재벌들이 알몸을 그대로 드러낸 1일 증시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내부거래로 매출액을 부풀리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못하는’ 재벌들의 모습이 악재로 작용할까봐 조바심을 가졌던 증시 전문가들은 의외로 증시가 강세를 나타내자 밝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증시전문가들은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재벌들의 ‘비린내 나는 재무구조의 공개가 원칙적으로 볼 때 악재가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한다. 다만 이미 알려진 악재는 더 이상 악재가 아닌 법. 대유리젠트증권 김경신이사는 “이날 발표는 재벌 전체의 내용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종목별로 움직이는 시장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시말해 잘못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투명성을 제고하는 계기가 될 수있다는 점에서 이번 결합재무제표 발표가 무조건 나쁘다고 볼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외국인들이 한국기업들에 대해 불신을 갖게되는 근본적인 요인으로 거론됐던 회계상의 오류가 이번 결합재무제표를 계기로 상당부분 공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외국인의 신뢰제고에도 도움이 될 수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이사는 “한국 회계법인에 대한 외국인의 불신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및 대우사태를 통해 심화된 상황”이라며 “따라서 재벌의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결합재무제표가 외국인에게 신선하게 인식될 수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이번에 공개된 내용이 어떤 형식으로든 주가에 반영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각 재벌그룹의 속사정이 그대로 드러난 이상 우량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병희기자>bbhe424@donga.com

▼재계 반응▼

주요 그룹의 결합재무제표 작성결과 부채비율이 기존 연결재무제표에 비해 모든 그룹이 높게 나타나자 재계는 “기업의 실상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일 공식논평을 내고 “결합재무제표상 부채비율 등 지표의 의미와 해석을 잘못할 경우 국내 기업의 대외신인도 하락은 물론 기업의 투명성 문제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결합재무제표의 지표를 활용해 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경우 기업경영 의욕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며 이에 대한 시정을 건의키로 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특히 결합재무제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유일한 제도로 의미해석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16대 그룹의 결합재무제표 작성결과 부채비율이 크게 상승했으나 일부 선진국 기업들도 부채비율이 놓은 경우가 있다며 이를 부실경영의 지표로 삼아 기업활동을 과도하게 규제하지 말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상의는 특히 미국 GE와 GM 등도 연결재무제표상 부채비율(금융기관 포함)이 각각 840%와 1230%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은 부채비율이 다른 기업들에 비해 현저히 낮게 나온 것에 대해 안도를 하면서도 결합재무제표에 금융계열사를 포함할 경우 부채비율이 엄청나게 높아지고 이를 혹시 기업 부실로 오해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우량 금융계열사를 다수 보유하다고 주장하는 삼성으로서는 고객이 보험료로 맡긴 돈이 예수금으로 곧바로 부채로 산입되기 때문에 결합재무제표로 회계처리할 경우 부채비율이 444%로 높아져 실태를 왜곡할 수 있다는 입장.

LG측은 “부채액수는 연결재무제표 작성시와 같으나 계열사에 출자한 자본금이 상계된 탓에 부채비율이 높아졌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앞으로 지주회사 설립 등 지배구조 및 출자구조 개편을 통해 비금융 부문 부채비율을 200%이하로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삼성의 한 관계자는 “모그룹의 부채비율이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한 결과 배 이상 급상승한 사실은 의미가 있다”며 “결합재무제표가 기업의 경영 상태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으로서 위력을 실감하겠다”고 토로했다.

<구자룡·이훈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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