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부 6개월 점검 좌담(中)]경제-노동분야

  • 입력 1998년 8월 24일 19시 47분


▼김학준총장〓오늘은 김대중정부 출범 6개월을 점검하는 두번째 좌담회로 경제분야를 진단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지난 반년간의 현정부 경제부문 실적을 평가해 주십시오.

▼김광두교수〓현정부가 내세우는 기본철학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은 뚜렷한 개념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구조조정 초기부터 ‘기업살생부’가 나돌아 혼란이 가중됐어요. 정부가 기업을 골라 죽인다는 발상은 기본철학과 배치된다고 봅니다. 또 기업에 빅딜(대규모 사업 교환)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것 역시 기본원칙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병행하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는 경제논리 즉 시장경제와 정치논리 즉 민주주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두 논리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어떤 기준으로 해결하느냐가 관건이에요. 현대자동차 노사문제는 이같은 갈등이 충돌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런데 문제해결이 정치적 타협으로 귀결됐다는 생각입니다.

▼이영선교수〓경제부문 평가는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면서 구조조정을 잘 하고 있는지 여부와 단기적인 업적은 있는지 하는 점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단기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대증요법은 괜찮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경제가 국민이 바라는대로 안정된 것은 아니지만 발등의 불은 일단 껐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비전을 제시하고 있느냐에 있어선 문제점이 많다고 봅니다. 경제위기의 한 요인인 관치금융이 왜 관행화됐느냐 하는 점도 정치경제학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관치금융은 정경유착을 통해 정치권이 경제권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얻어쓰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풀지 못하는 상태에서 단기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미래에 다시 경제위기에 부닥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김총장〓정치논리가 경제를 지배하면 그 경제는 반드시 파산하고 맙니다. 북한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70년대 초까지 외형적으로는 북한 경제가 남한을 압도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하지만 지도자에 대한 우상숭배 등 과도한 정치논리가 경제를 철저하게 왜곡하면서 북한 경제는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우리도 정부가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방식을 30년 이상 지속하는 바람에 관치금융과 환율조작 등이 계속돼 왔습니다. 과거 정부와 북한의 실패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경제는 경제논리대로 굴러가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정치세력이 혜택을 누리기 위해 경제에 개입하는 것은 절대로 금물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현정부가 경제운용 원칙은 제대로 설정한 것으로 보지만 여전히 관치금융이 유지되고 있고 퇴출은행 선정과 투자신탁사 처리 등에서 정치논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김교수〓세계경제가 하나로 연결돼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제경쟁력과 경기규칙 준수라는 두가지 기준이 필요합니다. 규칙 준수를 위해 경제주체들이 도덕성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금융기관이나 기업을 부실경영한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 차원의 책임 규명이 매우 미흡합니다. 부실기업주는 잘 살고 그 책임은 국민이 지는 관행이 30여년간 계속돼 왔어요. 정치권은 여전히 도덕성과 경기규칙을 지키지 않고 있어요. 해외도피중인 정치인을 사면을 전제로 입당시키려는 사례도 있어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부패한 정치논리에 의해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교수〓경제위기는 기아 한보그룹 등 대기업 연쇄부도에서 비롯됐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정치적인 의도로 대기업에 자금을 주어 과다투자하게 한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어요. 결국 정부와 정치권의 개혁 없이는 본질적인 경제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6개월간 정치적인 변화는 사실상 없었다고 봅니다. 오히려 비민주적인 틀을 더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새 정부가 들어선 뒤 개혁다운 정부개혁을 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경제를 잘 끌어갈 수 있는 조직이 없는데다 부처간 이해를 조정하는 기능도 없어요. 대통령이 직접 조정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평가도 없고 대통령이 모든 조정을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정치논리가 경제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해야 합니다.

▼김교수〓경제운용의 핵심과제는 대외신인도 제고와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 불안심리 해소입니다. 이를 위해 금융 기업 정치 정부의 구조조정이 시급해요. 정부와 정치의 구조조정이 우선돼야 금융 기업 구조조정도 제대로 됩니다. 정부와 정치의 논리가 경제에 우선하는 것은 금융과 기업에 대한 규제 때문입니다. 규제를 풀면 정부와 정치가 경제에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고 작은 정부가 만들어질텐데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어요. 금융 기업 구조조정도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정부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금융과 기업의 현장을 모르는 상태에서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때문에 이 또한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이는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큰 그림이 없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김총장〓경제의 미래에 대한 큰 밑그림이 없다는 것은 중요한 지적입니다. 정치부문에 대해서도 비전이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부는 국민이 믿고 기대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국민은 우리가 언제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졸업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이교수〓IMF 졸업 자체를 목표로 설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IMF라는 체제를 잘 활용해 경제의 기본구조를 완성한다면 IMF체제 속이든 바깥이든 문제가 안됩니다. 정부와 관료가 세계화 정보화 흐름에 맞는 정책을 펴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본다면 외부기관과의 협의 그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목소리를 점차 높여가면서 경제기반을 탄탄히 다져 장기적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김교수〓IMF체제 이후 가장 큰 어려움은 신용경색입니다. 따라서 신용경색 해소는 큰 과제인데 정부는 이 문제를 푸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첫째 이유는 구조조정 대상에 대해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기준이 있으면 완전하지는 않아도 어느 기업이 살고 죽을지 알 수 있어요. 구조조정 초기에 망할 기업은 협조융자를 받아 살아났고, 괜찮은 기업은 자금 부족으로 망했어요. 둘째 이유는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한 것입니다. 은행에 대해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기준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 기준시점에 혼선이 있었습니다.

▼김총장〓경제정책은 실기(失機)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제때 필요한 정책이 나와야 합니다. 정책이 뒷북치는 것은 우리 정책결정 과정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정책결정 기구에 일대 개혁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권은 아직 개혁입법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어요. 따라서 김대중정부가 6개월을 허송세월한 것이라고 혹평할 수 있습니다.

▼이교수〓정책에 일관성이 없고 결정이 늦어지는 한 요인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치개혁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다른 이유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좋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김교수〓정부의 의사결정이 늦은 데는 공동정권의 특성이 작용하기도 합니다. 부처간 이기주의도 이와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금융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산업의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점도 문제예요. 초기 투자가 많은 미래산업과 사양산업, 투자에 적극적인 기업과 소극적인 기업이 있는데도 이같은 특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대기업 부채비율 200% 달성을 요구하고 있어요.

▼김총장〓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김대중정권이 우리 경제를 어떤 쪽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 좋다고 보십니까.

▼이교수〓IMF 졸업 그 자체가 희망이 돼선 안됩니다. 이번 기회에 정치와 정부가 모두 개혁돼야 합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정책이 구사될 수 있어요.

▼김교수〓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정부개혁을 단행해 정경유착의 소지를 극소화해야 합니다. 공무원들이 간섭할 여지를 줄여야 희망이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노사관계 등에서 나타난 것 같은 정치논리가 계속 작용하면 희망은 없어집니다. 지금은 순전히 정치논리에 의한 정치적 타협, 특정 정치인의 인기로 노사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이러면 정말 희망이 없습니다. 앞으로 노사문제가 구조조정의 핵심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어요. 사업장 내부에서 노사간 필요에 의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치논리로 해결하면 우리나라는 정말 생존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경제논리에 의해 해결하되 정치논리는 이를 보조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투신사 문제만 해도 금융감독위원회가 세워놓은 기본원칙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데모한다고 정치적 타협을 시도한다면 결국 국민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면 외국인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제2의 환란이 불가피해집니다.

▼이교수〓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민주주의란 규칙을 말합니다. 규칙을 안 지키고 다른 힘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정치논리입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려면 규칙을 제대로 만들고 규칙을 준수하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김총장〓대한제국 말기에 서방 언론인인 매킨지는 “대한제국은 개혁하라.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고 설파했습니다. 개혁을 하지 않은 대한제국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매킨지의 충고가 절실하게 들려지는 시기가 지금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개혁이 필요합니다. 개혁이 있어야만 21세기에 우리 사회가 살 수 있습니다.

〈정리〓김상철·임규진기자〉sckim00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