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대표 승소]투명경영 계기…재벌개혁 촉진예상

  • 입력 1998년 7월 24일 19시 40분


제일은행 소액주주의 승소는 경영진의 전횡과 독단적인 경영에 대항, 실질적인 주주권한을 획득했다는데서 의의를 찾을 수있다. 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경제개혁,즉 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실부문 정리를 서두르고 일반주주들의 경영견제가 정착되면 ‘투명한 기업정보 공개와 이를 바탕으로 한 기업가치 결정’이라는 구조조정의 최종목표가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경영 강화〓참여연대소속 김주영(金柱永)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그동안 말뿐이던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경영진에 물었고 구체적인 배상액수를 정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권한이 강화돼 법적 근거없이 회사를 지배해오던 오너의 영향력이 상당부분 약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이사회는 오너와 소수의 경영진이 결정한 사항을 추인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등재이사에 대한 책임추궁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에 이사회 안건을 소홀히 다룰 수 없게 됐다. 이사들이 경영 감시자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는 얘기다.

5대그룹의 한 임원은 “오너가 부실계열사를 지원하라고 지시하면 반대하는 임원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고 털어놓고 “그러나 이제부터는 독단적인 결정에 브레이크를 거는 소신파 임원이 등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출관행에 일대개혁〓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재무구조가 부실한 기업에 거액의 대출을 해 은행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것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금융계의 고질적인 대출관행을 공론화하고 부실대출에 대한 배상책임을 경영진에 묻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한보철강에 대한 금융권의 대출은 사실 정치권과 정부의 대출압력으로 ‘부실한 회사인줄 뻔히 알면서도’ 실행된 것이다. 정부가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에 부도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은행들은 판단한 것이다. 이런 관치금융이 뿌리를 내리면서 현재의 경제위기가 심화됐고 금융기관을 곪게 하는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젠 이런 관행도 바뀔 수밖에 없다. LG경제연구소 김주형(金柱亨)상무는 “이번 판결로 은행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요구를 과감히 거부하고 주주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경영풍토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했다.

▼재벌개혁의 가속화〓재벌개혁은 투명한 기업경영과 경영성과에 대한 경영주 책임분담이 선결되지 않는 한 요원하다.

정부는 경제개혁의 양축으로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설정했으나 기업 구조조정의 경우 핵심사업부문의 맞교환을 목표로 추진된 ‘빅딜’은 지지부진하고 부실기업 퇴출도 퇴출기업 숫자만 맞추는 등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그런데도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실리때문에 재벌을 근본적으로 손대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연구위원은 “재벌의 독단적인 의사결정과 방만한 투자로 현재의 경제위기가 초래됐다”며 “이번 소액주주의 승리는 지지부진한 재벌개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경영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다수의 소액주주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기업〓오너 소유’라는 전근대적인 기업관을 불식하는데도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강운기자〉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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