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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7월 13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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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노동관계장관 담화는 정부의 이같은 인내가 한계에 이른 시점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노동계의 반발에 끌려다니다가는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수출산업 붕괴 △경기침체 심화 △외국인 투자기피 등의 암초에 걸려 모두가 공멸한다고 판단한 것.
정부는 “노동계의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강력하고 단호하게 처리하겠다”며 강경 대응 입장을 천명하고 나섰다. 14, 15일로 예고된 금속 금융 공공부문의 연쇄 총파업은 대외신인도 추락과 수출감소 등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감안할 때 자폭(自爆)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국자본의 급격한 증시 이탈, 수출경쟁력 약화, 금융시장의 신용 경색 등 각종 경제 지표가 위험신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노동계 총파업까지 겹치면 한국경제는 회복 불능의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 투자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무엇보다도 노사불안에 민감하다.
노사관계불안은 최근 국내 증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급속하게 이탈하고 있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올들어 3월까지 매달 9억∼18억달러가량 들어오던 외국자본이 노사관계가 불안정해지기 시작한 4월이후 급감하기 시작, 지난달에는 투자액보다 무려 3억달러나 많은 외화가 빠져 나갔다.
직접 투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외국업체와 국내업체의 인수합병(M&A)을 주로 처리하는 법률회사(로펌)인 김&장의 하봉우(河鳳旴)고문은 “불확실한 경제전망과 노사불안, 구조조정 추진의 불투명으로 대형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직 직접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는 이달초 금융기관 구조조정의 미흡과 이에 따른 노동계의 반발을 감안, 국내 은행에 대한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총 고정투자증가율이 -27.7%, 소비증가율이 -3.5%로 예상되는 등 실물경제의 생산기반과 내수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총파업은 한국 경제의 마지막 보루인 수출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수출 주력 업종인 자동차 생산 공장의 가동률은 50%를 밑돌고 있으며 올들어 조선 기계 전기전자류 수출도 작년동기 대비 10%가 감소했다.
이와 함께 금융경색에 따른 부도업체수도 폭발적으로 증가, 작년 12월부터 5월말까지 △제조업 6천6백86 △서비스업 7천1백18 △건설업 2천5백87 △기타 7백87 등 총 1만7천1백78개 업체가 부도를 냈다.
경기 수축기였던 92년 한해 동안의 부도업체수 1만7백69개보다 벌써 60% 가까이 많다.
노사관계 악화와 금융권의 파업으로 금융시장이 혼란을 빚게 되면 부도업체가 더욱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만큼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더 잃게 된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당초 3% 전망에서 마이너스 5∼6%까지로 거듭 하향 조정되고 있다.
이필상(李弼商)고려대교수는 “경제가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시기에 노동계가 총파업을 벌이면 바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전산업의 마비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병희기자〉bbhe4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