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시대]「경제의 틀」새로 짤 때다

  • 입력 1997년 12월 21일 20시 24분


김대중(金大中) 시대가 가져올 변화는 경제분야에서 부터 구체성을 띠고 나타날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의 위기는 경제파탄에서 비롯됐고 이의 극복이 새 대통령의 가장 중요하고 급한 임무라는 데에 아무도 딴 말을 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의 등장은 구체제 경제의 빠른 퇴장을 예고한다. 정치권력의 깊숙한 개입 속에서 재벌과 관료가 주도했던 구체제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 사실상 파산선고를 받은 상태다. 그런 가운데 김당선자는 19일 『모든 기업을 권력의 사슬과 비호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또 20일 『새 정부는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분명한 태도를 취하겠다』며 『대기업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국민에게 부담을 돌리는 기업은 정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의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말 끝에 나온 「경쟁력 상실기업 정리론」은 「김대중 경제」의 한 축이 될 것 같다. 60년대 이후 값싼 노동력과 외국자본을 결합, 수출에 주력한 경제개발 전략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극소수 독점재벌에 인적 물적 자원을 몰아주었고 그 과정에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구조화했다. 이에 따라 굳어진 재벌중심 경제구조는 한계에 이르렀다. 재벌경제의 효율보다는 비효율이 더 커져버린 것이다. 「팽창과 문어발」로 요약되는 양적 경쟁에 매달린 나머지 결국은 문어발 가운데 어느 한 발도 세계 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추는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재벌의 영향력은 너무나 커져 재벌의 고통을 수반하는 어떤 제도개선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재벌들은 힘이 너무 컸기 때문에 권력까지 움직여 금융도 독점할 수 있었지만 무분별한 차입경영으로 치닫다가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또 한국 금융의 총체적 부실을 부채질했고 끝내는 경제파탄의 한 원인제공자가 됐다. 김당선자는 바로 「정경유착형 재벌중심형 관치금융형」으로 요약되는 경제의 낡은 틀을 새로운 틀로 바꾸어 놓아야 할 과제를 떠안고 출발하는 것이다. 개발독재에 반대하고 민주적 시장경제를 주창해 온 그는 종래의 한국형 경제개발시스템을 수술할 집도의(執刀醫)로 지명받은 셈이다. 새 대통령에 당선된 뒤 그가 던진 발언들은 낡은 경제패러다임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결의지를 어느 정도 충분하게 보여주었다고 평가된다. 그가 제시한 방향은 IMF의 권고와도 통한다. IMF는 한국경제를 세계경제의 보편적 규범에 맞게 근본적으로 재편할 것을 권고했다. 재벌과 금융을 개혁하고 정경유착을 해소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시장경제」 「자유경쟁」 「적자생존」의 강조만으로 경제위기가 극복되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가시화하지는 않는다. 김당선자는 우선 IMF체제를 단기간 내에 극복하고 효율과 형평을 조화시킨 경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재벌중심 경제의 폐해 해소는 새로운 성장기반 및 일자리 창출과 맞물려야 한다. 그 첫 작업이 전문화된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기업을 기존의 재벌과 관료에 대체하는 성장주역으로 육성하는 일이다. 성장의 기반을 재구축하고 실업보다 많은 취업을 가능케 해야 한다. 그리고 근로자 농민 중소기업인에게도 성장의 열매가 골고루 돌아가는 합리적 분배시스템을 제시해야 한다. 김당선자는 선거기간 중에도, 선거에서 승리한 뒤에도 고용안정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각 산업 및 기업의 본격적 구조조정을 통한 국가경쟁력 회복과 고용안정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상충한다. 저성장이 예고된 IMF체제하에서 구조조정과 실업최소화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하는 것은 김당선자 앞에 놓인 최대의 당면 과제 가운데 하나다. 금융시스템을 조속히 정상화해 산업자금을 원활하게 공급하는 금융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은 새로운 성장주역 육성의 전제조건이다. 이 조건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현재의 경제위기 탈출은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한편 IMF체제의 고통을 극복하려면 모든 경제주체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김당선자의 민주적 시장경제론에 대해 고급관료 재벌 일부언론 등 기득권층의 반발이 언젠가는 고개를 쳐들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그의 말대로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기업」을 시장원리에 따라 모두 퇴출시키고 금융기관들도 과감하게 구조조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구사할 경우 상당한 반발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요컨대 목표가 분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얼마나 실효성 있고 설득력 있는 정책수단을 개발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느냐가 문제다. 김당선자는 지난 3월 펴낸 「21세기 시민경제 이야기」에서 재임기간중 달성할 경제목표로 △물가상승률 3% △적정금리 7∼8% △주가지수 1500 △21세기초엽 경제5강 진입 등을 제시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으로 △저효율 고비용 구조의 개선 △물가안정과 기술입국 △노사관계 안정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체제 △시장경제 △농촌경제 부흥 등 6대 과제를 꼽았다. 그러나 물가만 하더라도 「상승률 3%선 억제」는 지금에 와서 꿈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지금의 금리수준은 20∼30%에서 계속 고개를 쳐들고 있다. 주가지수는 400선에서 부침하고 있다. 또 「세계5강 진입」 표방은 자칫 과거 개발시대처럼 경제운용의 비틀림을 자초할 우려가 있다. IMF가 최소한 2년간 경제정책 전반의 틀을 규정해버려 운신의 폭이 좁다는 점도 문제다. 김당선자는 차기 대통령이 되기 전에 내놓은 목표들부터 재설정하고 공약을 현실화,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하고 내놓는 땜질식 정책과 대책이 아니라 총론과 각론이 잘 부합하는 「깊이 있고 무게 있는」 처방들을 제시, 각 경제주체들의 신뢰와 동참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한편 각 경제주체의 자발적 협조도 절실하다. 기득권층을 포함, 모두가 겸허한 자세로 경제회생을 위한 구조개혁과 변화에 동참하지 않으면 「그릇」 자체가 완전히 깨져버리는 불행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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