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의 만남이 내겐 바캉스예요”[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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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9번째 방한한 베르베르 작가
미술관, 길거리서 팬들과 스킨십
국내 ‘베르베르 현상’ 납득할 만도
◇베르베르의 조각들/비미디어컴퍼니 편집부 엮음/200쪽·1만6800원·비미디어컴퍼니

이호재 기자
이호재 기자
“작가님 아니에요?”

지난달 30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에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2)를 우연히 만난 관람객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관람객들은 베르베르에게 사인을 요청하고, 함께 셀카를 찍었다. 이날 베르베르는 서울에서 ‘뮤지엄 산’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관람객들과 인사하곤 했다. 피곤하지 않냐고 물으니 베르베르는 능청스럽게 답했다. “문제없어요.”

‘베르베르의 조각들’은 장편소설 ‘개미’(1993년), ‘타나토노트’(1994년), ‘뇌’(2003년), ‘신’(2008년) 등으로 한국 독자에게 사랑받은 베르베르를 조명한 인터뷰집이다. 출판사 비미디어컴퍼니 직원들이 베르베르와 인연을 맺은 이들을 인터뷰해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가장 눈에 들어온 건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의 인터뷰다. 홍 대표는 1993년 ‘개미’를 출간할 때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책을 알렸다. 신문 형태의 16쪽짜리 홍보용 잡지를 만든 것이다. 신문 광고로 ‘개미’와 작가에 대한 퀴즈를 내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문의 전화가 쏟아져 업무를 못 볼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홍 대표는 1994년 ‘타나토노트’를 출간했을 땐 베르베르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당시 중소 출판사였던 열린책들로선 큰 비용을 들인 홍보 방식이었다. 교보문고 사인회에 독자 800명이 모일 정도로 화제가 됐다. ‘베르베르 현상’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였다. 홍 대표는 “마케팅이 없었으면 책이 5000부 정도 팔렸을까”라고 회고한다.

숭고한 영역일 것만 같은 문학 번역도 판매량 증가에 일조했다. 베르베르의 작품을 15년 동안 번역한 전미연 번역가는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번역가는 마케팅팀의 일원”이라고 단언한다. 독자의 연령, 성별, 직업을 고려해 문체를 바꿔 번역한다는 것이다. 특히 베르베르처럼 어려운 과학 이론을 쉬운 언어로 풀어쓰는 작가의 작품은 ‘가독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전 번역가는 강조한다. 베르베르 작품이 3500만 부가 팔렸는데 이 중 1300만 부를 한국 독자가 산 데엔 번역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가의 스킨십이다. 책 인터뷰에서 베르베르는 “책 홍보를 위해 떠나는 여행이 내겐 바캉스”라며 독자를 만나는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베르베르가 방한한 건 이번이 9번째다. 지난달 26일 한국에 온 베르베르는 이달 6일 출국할 때까지 여행, 사인회뿐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수백 명의 독자를 만났다. 꿀벌 그림을 그리고, 이름을 써주는 베르베르의 사인을 받은 독자라면 지난달 20일 출간된 장편소설 ‘꿀벌의 예언’(전 2권·열린책들)을 사지 않을 수 있을까. 베르베르에 대해 “한물갔다”는 일각의 우려에도 ‘꿀벌의 예언’ 1권이 출간 직후 교보문고 종합 6위를 차지한 데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9번째 방한#베르베르 작가#베르베르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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