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 최초 테이트 큐레이터 이숙경 “광주에서 예술의 힘 보여드릴게요”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2일 13시 52분


코멘트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이숙경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

이숙경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광주비엔날레 제공
이숙경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광주비엔날레 제공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예술총감독의 손에서 탄생한다. 주인공은 국제 미술계에서 20여 년 간 활동해 온 이숙경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54)다.

이숙경 감독이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 펼쳐낼 주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출발했다. 비엔날레 개막을 약 한 달 앞둔 10일 이 감독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 부드럽지만 강한 예술의 힘 보여줄 것


앙헬리카 세레, ‘내 두 번째 피부에 말씨를 뿌리다’, 2023년. 페달 직기, 수직 직기 및 나무 바늘 자수. 260 x 690 cm. 작가 및 엑스트라 갤러리 제공. 사진 후안 카를로스 멘코스.
앙헬리카 세레, ‘내 두 번째 피부에 말씨를 뿌리다’, 2023년. 페달 직기, 수직 직기 및 나무 바늘 자수. 260 x 690 cm. 작가 및 엑스트라 갤러리 제공. 사진 후안 카를로스 멘코스.


그는 이번 전시 주제가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했던 내적 성찰을 통해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국 전역이 록다운 되어 외출할 수 없을 때 그간 못 본 넷플릭스도 보고, 독서도 했죠. 그러다 동양의 고전을 다시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저의 지적 뿌리가 그곳임을 깨달았어요. 유교적인 집안에서 자랐는데,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했던 많은 말씀이 오랜 역사에서 나온 것임을 새삼 알게 됐죠.”

이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홍익대 대학원 재학 시절인 26세 때 최연소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됐다. 이후 영국 에섹스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2007년 테이트 미술관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큐레이터가 됐다. 지금은 테이트 미술관에 다양한 국적의 큐레이터들이 일하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드문 일이었다.

그는 이번 주제가 “물이 아닌 힘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유약어수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린 태도가 결국은 바위를 뚫듯 가장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다는 의미에요. 결국은 누가 누구를 이기는 것이니 권력에 관한 말이죠.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들어 감동을 주고, 때로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기까지 하는 예술이 바위를 뚫는 힘을 갖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 개인적인 것에서 세계적인 것으로


차이쟈웨이, ‘나선형 향 만트라 – 반야심경’, 2014년. 대만 TKG+ ‘우리는 무에서 빙빙 돌며 왔다’ 전시에 설치에 모습이다. 나선형 향(香) 3점, 각 지름 150cm. 작가 및 대만 TKG+ 제공. 사진 스티브 헝.
차이쟈웨이, ‘나선형 향 만트라 – 반야심경’, 2014년. 대만 TKG+ ‘우리는 무에서 빙빙 돌며 왔다’ 전시에 설치에 모습이다. 나선형 향(香) 3점, 각 지름 150cm. 작가 및 대만 TKG+ 제공. 사진 스티브 헝.


4월 7일 개막해 7월 9일까지 열리는 광주비엔날레는 비엔날레 전시관은 물론 국립광주박물관, 무각사, 호랑가시나무 등 광주 전역 5개 전시 공간에서 펼쳐진다. 세계 각국에서 작가79명이 참여했고, 이 중 절반이 넘는 40여 명이 신작을 선보인다.

4가지 소주제는 각각 ‘은은한 광륜’, ‘조상의 목소리’, ‘일시적 주권’, ‘행성의 시간들’로 구성된다. 첫 주제는 ‘은은한 광륜’은 광주의 정신을 영감의 원천이자 저항과 연대의 모델로 삼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 주제는 점점 근대주의 비판, 탈식민주의, 생태와 환경 등 더 큰 주제로 확장되면서 뒤이어 변주된다.

헤라 뷔육타쉬즈얀, ‘속세에서 속삭이는 자들’, 2023년. 천에 흑연과 융단. 작가 및 두바이 그린아트 갤러리 제공. 사진 헤라 뷔육타쉬즈얀.
헤라 뷔육타쉬즈얀, ‘속세에서 속삭이는 자들’, 2023년. 천에 흑연과 융단. 작가 및 두바이 그린아트 갤러리 제공. 사진 헤라 뷔육타쉬즈얀.


이 감독은 “아주 개인적이고 특수한 이야기에도 세상과 공명하는 보편적인 것이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참여 작가들도 개인적인 삶이나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젠더 등의 이야기를 진정성있게 풀어내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보편적인 것으로 엮어주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죠.”

6일 입국한 그는 6주간 한국에 머물 예정이다. 그는 “25년 만에 이렇게 오래 한국에 있었던 것은 처음”이라며 “무언가 안심되고 안정적인 기분이 들고, 광주에 연고는 없지만 이 장소와 특별한 관계가 생겨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처음 열렸을 때 저도 보러 왔습니다. 당시 전시에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 보러 오신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이번에도 한국 관객이 많이 오실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에 의자와 휴식 공간도 충분히 마련했으니, 마음의 안정과 영감을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