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한 대사량에 꾀 부릴수 없어… 나와의 마지막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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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신의 아그네스’ 박해미… 뮤지컬-드라마서 22년만에 귀환

박해미의 금발은 강렬한 닥터 리빙스턴과 잘 어울린다. 그는 “5년 전부터 흰머리가 많이 나 아예 금발로 바꿨다. 리빙스턴도 미국인이지 않냐”며 웃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박해미의 금발은 강렬한 닥터 리빙스턴과 잘 어울린다. 그는 “5년 전부터 흰머리가 많이 나 아예 금발로 바꿨다. 리빙스턴도 미국인이지 않냐”며 웃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연극 ‘신의 아그네스’에 화려한 리빙스턴 박사가 나타났다. 샛노란 금발에 깊고 진한 눈빛, 주머니에 한 손을 꽂은 채 다른 손에 쥔 담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까지. 시종일관 칼처럼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한 그는 보는 이의 감정까지 압도한다.

‘맘마미아’의 ‘도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등 뮤지컬, 드라마를 오가던 박해미(56)가 7일 개막하는 신의 아그네스로 돌아왔다. 작품은 갓 태어난 자신의 아기를 숨지게 한 수녀 아그네스(이지혜), 그녀를 보살피려는 원장 수녀(이수미)와 아그네스를 구하려는 의사 닥터 리빙스턴 등 3인이 펼치는 심리극이다. 뉴욕의 한 수녀원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으며 신과 인간, 종교와 행복에 대해 질문한다.

박해미의 연극 무대는 1998년 ‘햄릿’ 이후 22년 만이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종교에 대한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제 삶의 종교는 곧 무대였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화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1984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한 그와 연극의 조합은 다소 낯설다. 그는 “뮤지컬 넘버의 멜로디, 가사에 기대어 연기하는 게 익숙하다. 어마어마한 대사량과 연기만으로 넓은 극장을 채우는 작품이라 꾀를 부릴 수 없었다”면서도 “나와의 마지막 싸움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신의 아그네스는 1982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후 ‘여배우의 에쿠우스’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1983년 초연했다. 박해미는 “‘대학로 우량주’들만 출연하던 명작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실제 고(故) 윤소정을 비롯해 윤석화 박정자 손숙 신애라 김혜수 전미도 등 쟁쟁한 배우들이 이 작품을 거쳤다.

닥터 리빙스턴은 과학과 이성을 상징하는 인물. 그는 “다른 이의 트라우마 극복을 돕는 강한 여자다. 겉은 차가워 보여도 인간적인 면을 가진 게 저랑 닮았다”고 했다. 다만 흡연 연기만큼은 고역이다. 집착, 고뇌를 상징하는 담배는 극 전개에 필수다. “평생 멀리한 담배를 손으로 쥐고 연기를 머금다가 뿜어내는 게 어렵다”며 웃었다. 작품은 여성극으로서 의미도 깊다. 그는 “여성들이 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고통당할 수밖에 없는지 다룬다. 여성 억압은 여전히 해결이 안 된 문제 같다”고 했다.

몇 해 전 가족 문제로 경제적, 정신적으로 곤두박질쳤던 그는 지난해 뮤지컬 ‘쏘 왓’ 총감독으로 복귀했다. ‘해미뮤지컬컴퍼니’ 대표인 그는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시트콤 제작도 준비 중이다. 그는 종종 연출가들에게 “우는 연기 좀 하지 않게 해 달라”고 청할 만큼 “모든 작품은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지론이 확고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윤우영 연출가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바탕 제대로 놀 수 있는 무대를 부탁해요.”

7∼29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4만∼8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박해미#신의 아그네스#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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