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적인 외모지상, 한국사회의 지옥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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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애니영화 ‘기기괴괴 성형수’ 만든 조경훈 감독-전병진 PD
네이버 웹툰 원작만화 영화화
中투자 ‘한한령’에 좌초… 6년 걸려
해외 유수 영화제 초청 잇따라

9일
 개봉 후 일주일 만에 5만 관객을 모은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의 전병진 PD(왼쪽)와 조경훈 감독. 조 감독은 “타인의 
시선에서 규정된 미의 폭력성을 부각하기 위해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연예계를 배경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에스에스애니먼트 제공
9일 개봉 후 일주일 만에 5만 관객을 모은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의 전병진 PD(왼쪽)와 조경훈 감독. 조 감독은 “타인의 시선에서 규정된 미의 폭력성을 부각하기 위해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연예계를 배경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에스에스애니먼트 제공
뚝뚝 떨어져 나가는 살점, 흘러내린 피부 사이로 보이는 뼈, 반죽처럼 일그러진 얼굴.

6일 개봉한 ‘기기괴괴 성형수’는 관객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길 수 있다. 화장품처럼 피부에 바르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외모를 바꿀 수 있는 ‘성형수’를 소재로 했다. 못생긴 얼굴과 뚱뚱한 몸매로 피해의식을 가진 예지가 성형수를 손에 넣으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렸다. 웹툰 ‘절벽귀’로 알려진 오성대 작가가 2013년부터 네이버에 연재한 옴니버스식 호러 웹툰 ‘기기괴괴’ 중 성형수 편이 원작이다. 영화를 만든 조경훈 감독과 전병진 PD를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몸에 붙일 살이 필요해진 예지가 성형수로 부모의 살점을 떼어내거나, 성형수 부작용으로 살이 모두 녹아내려 욕조가 지방 덩어리로 가득 찬 장면은 그 자체로 기괴하다. 더 섬뜩한 건 영화가 묘사한 병적 외모지상주의가 현대 사회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못생긴 사람에 대한 무시, 타인의 시선이 족쇄가 돼 외모에 집착하는 주인공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과 같다.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미의 폭력성, 그 폭력이 얽히고설키며 만들어지는 인간 사회의 지옥도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 주인공의 감정선이 중요했다. 원작은 성형수라는 소재에 집중했지만 영화에서는 예지가 외모에 대한 상처를 갖게 된 유년 시절, 그 피해의식과 트라우마가 표출되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조 감독)

‘성형수’로 얼굴을 수차례 변형시킨 예지의 얼굴이
부작용으로 녹아내리는 장면. 트리플픽쳐스 제공
‘성형수’로 얼굴을 수차례 변형시킨 예지의 얼굴이 부작용으로 녹아내리는 장면. 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 제작에는 6년이 걸렸다. 중국 사람들이 성형수 이미지만 봐도 웹툰 제목을 알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기에 중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기획했지만 ‘한한령’으로 중국 측 투자가 좌초됐다.

“유아·아동용이 대부분인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청소년 이상 연령층이 보는 애니메이션 시장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중국 투자가 좌절된 뒤 자체적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고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 등을 끌어모아 여기까지 왔다.”(전 PD)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도 호러는 흔치 않은 장르다. 그래서 해외 유수 영화제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스페인 시제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애니메이션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밴쿠버 국제영화제에서는 동아시아 작품을 상영하는 비경쟁 부문인 게이트웨이에 초청됐다.

“장편 애니메이션에서 호러 장르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작품 설명을 위해 전작 사례를 들 수 있는 게 23년 전 나온 일본 ‘퍼펙트 블루’밖에 없더라. 그만큼 희소성 있는 영화다. 15세 이상 상업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입증한 첫걸음이 됐으면 한다.”(전 PD)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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