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읽으며 힐링 ‘위트앤시니컬’ 백년의 역사 가진 서점 꿈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9일 16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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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오픈합니다!”

15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오래된 서점 ‘동양서림’ 앞 인도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낙엽을 쓸던 유희경 시인이 손목시계를 확인하곤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가더니 동양서림 가운데 난 나선형 계단을 밟았다.

숨겨진 다락방에 오르는 기분으로 2층에 들어서면 눈앞에 아담히 꾸며진 12평 공간이 나타난다. 두 개 벽면에 늘어선 책꽂이엔 시집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고 다른 한 쪽엔 시를 읽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기다란 나무 책상과 의자 8개가 놓여 있다. 이날 ‘신촌 시대’를 마감하고 ‘혜화 시대’를 시작하는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이다.

‘서점 안 또 다른 서점’이 있다는 얘기에 사람들이 하나 둘 2층으로 연결되는 동양서림 안쪽 나선형 계단을 기웃거렸다. 서점 주인인 유 시인은 신이 나서 방문한 이들에게 준비한 떡이며 귤을 건넸다. 이날 ‘위트…’의 1호 손님인 신영선 씨(41)는 “시를 읽는 사람과는 회사에서 오가는 말과 다른 종류, 다른 밀도의 참신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며 “서점이 새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서점과 대학원, 집 사이 이동경로부터 파악했다”고 했다. 4년 전 산후우울증을 문학으로 극복했다는 심 씨는 1년 전부터 ‘위트…’를 알고 지낸 단골이다.

시집만 취급하는 독특한 컨셉의 이 서점은 사실 2016년 6월 경의선 신촌역 앞에 문을 열었다. 전례 없는 시도에 주변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도 많았지만 예상과 달리 월 평균 900권이 넘는 시집이 팔리며 시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문을 닫아야 했다. 함께 자리를 공유하던 카페 파스텔이 월 400만 원이 넘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동양서림으로부터 ‘러브콜’이 왔다. 두 서점의 사정을 잘 아는 황인숙 작가가 다리를 놓았다. 동양서림은 부산 피난길에서 돌아온 장욱진 화가의 부인 이순경 씨가 1953년 개점한 서점이다. 1987년부턴 이 씨와 함께 서점을 운영해 온 최주보 씨가 명맥을 이어왔다. 서울시 미래유산으로도 선정했지만,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가는 손님만 가끔 있을 뿐한산했다. 아버지 최 씨로부터 서점을 넘겨받아 동양서림을 운영 중인 딸 소영 씨는 “이젠 사람이 북적대고 많이 찾아와 주면 좋겠다. 그 전엔 혜화동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는 것 같아 힘들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여러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살길을 찾고, 또 여전히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 응원을 받는 이 두 서점은 왠지 문학의 운명을 닮았다. 나오는 길에 돌아보니 흰 바탕에 녹색 글자로 된 동양서림의 오래된 간판 아래 ‘서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서점 동양서림과 위트앤시니컬이 함께 백년의 역사를 가진 서점을 꿈꾼다’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조윤경 기자yuniq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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