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병’ 걸리거나… ‘넵병’에 빠지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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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휘어잡은 새로운 유행병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개그 소재로 패러디한 아이유병, 방송에서 젤리를 좋아한다고 밝힌 가수 강다니엘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발히 공유되고 있는 ‘넵병’을 나타낸 단체 채팅방 이미지(위 사진부터). tvN·MBC 화면 캡처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개그 소재로 패러디한 아이유병, 방송에서 젤리를 좋아한다고 밝힌 가수 강다니엘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발히 공유되고 있는 ‘넵병’을 나타낸 단체 채팅방 이미지(위 사진부터). tvN·MBC 화면 캡처
“전신이나 반신 또는 사지 등 몸의 일부가 아이유의 행동 또는 습관으로 마비되는 질환입니다.”

얼마 전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아이유병’을 소재로 한 방송이 큰 화제가 됐다. 환자용 침대에 앉아있는 장기 입원 환자는 보라색 단발머리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밥이나 초콜릿을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가수 아이유의 모습과 행동을 패러디한 것이다. 아이유는 얼마 전까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동안 볼 수 없던 편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온라인에서 특정 연예인의 행동에 매력을 느껴 자발적으로 흉내 내는 모습들이 연예인의 이름을 따서 ‘○○병’으로 불리며 유행이다. 제주도에 살며 바닷가에서 요가를 하는 ‘이효리병’, 이불 속에서 젤리를 먹고 허벅지를 쓸어내리는 춤동작을 반복하는 ‘강다니엘병’도 있다. 불합리한 소비를 걱정하고 근심하는 ‘김생민병’도 등장했다. ‘병’이라고는 하지만 긍정적 의미가 담긴 것이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스타에 대한 팬덤의 태도가 ‘추종’에서 ‘공감’으로 변화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높은 위치의 스타보다 자기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스타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며 “그런 애정이 과하게 표현돼 ‘병’이라고 불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에서 휴식하거나 최고의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여전히 직업적으로 고민하는 스타의 모습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춤과 노래, 외모까지 완벽한 기획사형 스타에게선 보기 어려웠던 불완전함의 매력이다.

직장 상사에게 모든 표현을 “넵”이라고 대답하면서 감정 표현을 최소화하고 “네” “넹”보다 의욕이 충만해 보이는 효과를 노리는 ‘넵병’도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병’이라며 단체 채팅방의 한 장면을 갈무리한 사진이 자주 올라온다. 해당 게시물엔 ‘나도 이 병에 걸렸다’ ‘우리 회사 분위기와 똑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이는 한때 유행하던 ‘회사 가기 실어증’(회사에서 말이 잘 나오지 않고 혼자 있고 싶은 증세) 유형과는 다른 것이라 새롭다. 10일 방송된 온스타일 ‘열정 같은 소리’에서 한 출연자는 “일단 대답은 먼저 해 놓고, 언제까지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 건지 고민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충성하는 듯한 리액션을 유머 코드로 소비하는 세태에 대해 세상의 억압에 순응하는 자신의 태도를 자조하는 분위기도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영미 문화평론가는 “내가 처한 상황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 자체를 깨끗하게 버린 모습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며 “을(乙)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특정 연예인 따라 하기#아이유병#넵병#직장인들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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