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나이젤 “향기 구현, 그림 그리는 일과 같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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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찾은 에르메스 조향사 나이젤

최근 새 향수 ‘에르메스 트윌리’를 만든 조향사 크리스틴 나이젤을 서울 강남구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 만났다. 그는 “조향사는 영감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직업이라 보람 있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최근 새 향수 ‘에르메스 트윌리’를 만든 조향사 크리스틴 나이젤을 서울 강남구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 만났다. 그는 “조향사는 영감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직업이라 보람 있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크리스틴 나이젤은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의 향기를 만드는 에르메스 유일의 전속 조향사다. 최근 서울 강남구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응접실에서 만난 그는 짙은 감색의 원피스와 하이힐 차림이었다. 그의 머릿결은 건강하게 찰랑였고, 원피스는 실루엣이 넉넉하면서도 몸매를 돋보이게 했다. 어딘가 고급스러운 ‘에르메스’ 느낌.

―이번에 새로운 향수를 만드셨다고요, 나이젤 씨.

“네. ‘에르메스 트윌리’라는 향수예요. ‘에르메스 코드’를 즐기는 젊은 여성들을 상상하면서 향을 만들었죠. 젊은 여성들의 쾌활함과 밝음, 그들의 위트 말이에요.”

영미 소설 속 대사 같은 대답. 젊은 여성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 향수는 병목 부분에 에르메스의 미니 실크 스카프인 트윌리를 두른 디자인이다.

―에르메스 코드라고요.

“에르메스를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요즘 젊은 여성들은 스카프를 목에만 두르지 않아요. 가슴에도 머리에도 두르죠. 그런 점에서 한국 여성들은 갈수록 스타일이 대담해지는 것 같아요.”

그는 2014년 에르메스에 영입됐다. 당시 향수 업계의 빅 뉴스였다. 그의 이름은 ‘관능적 향수’의 대명사와 같았다. 스위스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스위스 제네바대에서 화학을 전공해 조향사가 된 그는 그동안 랑콤, 카르티에, 크리스티앙 디오르, 조르조 아르마니, 조말론 등 쟁쟁한 브랜드들의 향수 100여 개를 만들어 히트시켰다.

―에르메스는 다른 브랜드와 다릅니까.

“네! 확실히 달라요. 시장 테스트를 하지 않고, 그저 장인을 믿고 맡겨요. 그리고 브랜드를 익힐 시간을 충분히 주고 언제 제품을 만들어 내라고 독촉하지 않아요.”

그렇게 에르메스를 익히는 2년의 시간을 보낸 뒤 지난해 두 개의 제품을 만들고 올해엔 ‘오 데 메르베유 블뢰’에 이어 트윌리를 조향했다. 보조 스태프는 있지만 향을 결정하고 원료를 배합하는 건 오로지 그 혼자 한다.

―럭셔리 업계에 조향사는 몇 명이나 됩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우주비행사 수보다 적다는 거예요.(웃음)”

―다시 트윌리 이야기인데, 그래서 어떤 젊은 향기를 만들었습니까.

“핵심 원료는 생강, 튜버로즈, 샌들우드예요. 생강은 본래 소량으로 캔버스 역할을 하지만 전 생강 자체의 향에 집중했어요. 튜버로즈는 팜 파탈의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주고요. 샌들우드는 부드러우면서도 매력적인 동물적 느낌이라 많이 넣었어요. 조향사의 작업은 영감을 나누는 일이라 즐거워요.”

―어떻게 영감을 얻습니까.

“제게 향수를 만드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같아요.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을 떠올려 보세요. 에르메스 스카프의 여러 색을 섞어 향기로 구현하면 향수가 되거든요.”

나이젤은 파리에 오면 꼭 커피 한잔 같이 하자며 다정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에게서는 향이 나지 않았다. 수시로 자신의 몸에 향수를 뿌려 테스트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에르메스#에르메스 조향사#크리스틴 나이젤#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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