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전국시대 사무라이는 꽃을 든 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조홍민 옮김/256쪽·1만5000원·글항아리

일본 에도시대 말기 화가인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판화 작품. 각종 나무로 둘러싸인 사찰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글항아리 제공
일본 에도시대 말기 화가인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판화 작품. 각종 나무로 둘러싸인 사찰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글항아리 제공
‘꽃을 든 남자’야 그렇다 쳐도 ‘꽃을 든 사무라이’는 왠지 낯설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벚꽃에 심취해 있었고,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평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만의 약초원을 지어 은거했다.

식물학 전공 교수인 저자는 수많은 사무라이가 점멸한 일본 전국시대 역사를 다양한 식물을 중심으로 솜씨 있게 엮어냈다. 최근 역사학계에서 유행하는 미시생활사 연구를 연상시킨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당장 내가 죽는 살벌한 시대, 식물도 총력전의 한 수단이 됐다. 일본 각지 성(城) 안에 심은 나무들은 농성전을 대비한 식량이자 연료원이었다. 예컨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선 구로다 나가마사는 후쿠오카 성에 특수한 무기창고를 하나 지었다. 유사시 활로 만들어 쓸 수 있는 대나무로 창고 벽을 지었는데, 이 대나무들을 엮는 데 ‘말린 고사리’를 사용한 것. 말린 고사리는 물에 불리면 전투식량이 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공한 가토 기요마사 역시 구마모토 성을 쌓으면서 다다미 심으로 짚 대신 토란 줄기를 썼다. 토란 줄기 역시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먹을거리였다. 성 주변을 둘러싼 방어용 해자엔 물에서 자라는 연근을 키웠다. 구마모토 성 자체가 거대한 구황식물 농장이었던 셈이다. 수분을 머금어 불에 잘 타지 않는 녹나무는 적의 화공(火攻)에 대비한 방화용 도구로 심었다.

때론 식물도 무기가 됐다. 닌자는 ‘호로쿠다마’라는 수류탄을 만들 때 쑥을 사용했다. 쑥에 소변을 뿌려 흙 속에 묻어 놓으면 중요한 화약원료인 질산칼륨이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식물이 일본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저자의 시각이다. 예부터 물산이 풍부한 데다 고도(古都) 교토가 자리 잡은 간사이 지방을 벗어나 당시 변방이던 에도(지금의 도쿄)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도를 옮긴 이유다. 저자는 에도에 넓게 형성된 저습지를 개발하면 거대한 농지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 천도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이나가키 히데히로#사무라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