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나’, 韓 캐릭터 디자이너 손에서 탄생…“딸 사진보며 이미지 구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5일 15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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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엔 남자 캐릭터 '마우이'가 주인공이었어요. 하지만 기획 과정에서 진취적인 여자아이를 전면에 내세우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죠. 디즈니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랄까요."

저주받은 섬을 구하기 위한 소녀의 모험을 담은 디즈니의 신작 '모아나'의 탄생엔 한국인 캐릭터 디자이너의 역할이 컸다. 1995년 디즈니에 입사해 캐릭터 슈퍼바이저 자리에까지 오른 김상진 감독(58)이 주인공. 그는 '빅 히어로'(2015년) 땐 캐릭터 총괄 슈퍼바이저로, '겨울왕국'(2014년)과 '모아나'에선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24일 서울 성동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현실적인 소녀를 그려내기 위해 스무살 된 딸의 아기 시절과 영화 속 모아나와 같은 16살 때의 사진까지 모두 뒤져가며 이미지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동글동글한 얼굴형과 둥근 코, 머리숱 많은 까만 머리카락, 탄탄한 팔과 다리로 역대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가장 '현실적'이라 호평받는 모아나 캐릭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사실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만해도 호리호리한 공주님 이미지를 벗어나진 못했거든요. 모아나는 그 이미지조차도 탈피했고, 자기주장도 더 강한 캐릭터가 돼 많은 소녀들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딸도 그 어떤 캐릭터보다 모아나를 좋아하더라고요."

그는 '살아 숨쉬는 듯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마우이 목소리 연기를 맡은 드웨인 존슨의 얼굴 주름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모아나와 같은 또래 소녀들의 동영상 수십 편을 보며 특징을 잡아냈다. "디즈니는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대단해요. 물 위의 물거품 하나, 하늘 위의 새 하나까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을 들여요. 그런 회사에 오래 다니다보니 저도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웃음)"

감독은 최근 선보인 영화의 연이은 흥행으로 한껏 고무된 디즈니 본사의 분위기도 전했다. "디즈니는 '제3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어요. '겨울왕국'과 '주토피아'에 이어 '모아나'까지 연이은 세계적인 흥행으로 내부에선 디즈니가 이젠 '픽사'의 아성을 뛰어넘은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거든요."

감독은 모아나를 마지막으로 20여년 다닌 디즈니를 퇴사하고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요샌 2018년 개봉을 목표로 '토종' 애니메이션을 준비 중이다.

"최근 일본과 미국 애니메이션이 국내에서도 크게 흥행 중이죠. 그만큼 탄탄한 애니메이션 수요층이 있다는 얘기거든요. 언젠간 디즈니 동료들에게 '한국에서도 멋진 애니메이션 한편이 나왔다'고 소개할 수 있었으면 해요. 이젠 제 커리어의 '마지막 무대'라는 생각을 갖고 한국 애니메이션 발전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습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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