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전승훈]라라랜드, 반격의 한 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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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문화부 차장
전승훈 문화부 차장
 올해 골든글로브상은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가 휩쓸었다. 골든글로브 역사상 가장 많은 7개 부문을 수상했다.

 며칠 전 영화관에서 라라랜드를 혼자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면서도 텅 빈 것 같은 모순된 감정에 젖었다. 내가 꿈꾸던 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을까? 마누라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겠지만, 잃어버린 꿈과 사랑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라라랜드는 1950∼60년대 뮤지컬 영화의 매력을 마법처럼 되살렸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고민은 요즘 밀레니얼 세대의 그것에 더 가깝다. 예전 영화 속 커플들은 어떤 어려움과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사랑을 쟁취하고야 말았던 것과 달리, 라라랜드의 남녀 주인공은 사랑에 빠졌지만 꿈도 포기할 수 없다.

 이들의 꿈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에겐 진정한 ‘자아실현’이 중요하다. 부모 세대였다면 사랑을 위해 남자는 월급쟁이가 돼야 하고, 여자는 커리어를 포기했을 것이다. 평생을 지지고 볶고 살다가 어느덧 남자도, 여자도 꿈을 잃어버린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은 먼저 서로의 진정한 꿈을 이루길 응원한다. 그러면서 사랑도 쿨하게 떠나보낸다. 요즘 결혼하지 않고 사는 1인 가구, ‘혼밥 혼술’ 남녀가 괜히 많아지는 게 아니다.

 아름다운 음악, 화려한 군무와 탭댄스가 눈요깃거리지만 내 가슴에 남은 것은 남자 주인공의 말이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배우 오디션을 보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여자친구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위기는 인생이 내게 던지는 펀치야. 코너에 몰리더라도 펀치를 절대 피하지 않아야 해. 내가 위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마지막에 카운터펀치 한 방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야.” 

 삶의 펀치에 두들겨 맞아도, 절망에 빠져도,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아도 결국 쓰러지지 않는 것은 자존감 때문이다. ‘이 한 방에 쓰러질 내가 아니다’라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베스트셀러 ‘자존감 수업’의 저자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윤홍균은 “자존감은 집과 같은 것이다. 마음을 공격하는 수많은 비난과 비교, 열악한 외부 상황은 일종의 악천후다. 아무리 현실이 고돼도 집이 안락하면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새해 동아일보 문화부가 연재하고 있는 ‘희망바라기’ 시리즈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올해 데뷔 20년을 맞은 발레리나 김지영은 “무릎 수술 등 숱한 시련을 겪다 보니 남들과 다른 공감 능력이 생기는 것 같다”며 현역 최고령 무용수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몽골에서 기타 하나로 외로움을 달랬던 남매 가수 ‘악동뮤지션’은 “별(희망)은 눈에 안 보일 뿐이지, 사라지지 않아”라고 노래한다.

 올해 대한민국도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펀치를 맞으며 시작했다. 대통령이 탄핵 소추로 업무가 정지된 사이에 미국과 중국, 일본의 ‘스트롱맨’들의 외교적 위협이 거세다.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3배 어려운 ‘퍼펙트 스톰’에 휩싸일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문화계도 새해 벽두부터 출판계 유통회사 부도,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만신창이 상태다.

 그럼에도 희망을 말하고 싶다. 쏟아지는 펀치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면, 우리에게도 개혁의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1997년 외환위기 때 민주화와 경제개혁을 이뤄서 지난 20∼30년을 버텨 왔듯이, 올해의 총체적 위기에서도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나는 ‘반격의 한 방’을 준비할 것으로 기대한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라라랜드#희망바라기#골든글로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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