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 ‘예술’을 입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18일 국내 무대 오르는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쵸’로 본 오페라 의상의 세계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쵸’의 의상 디자인을 맡은 디자이너 주세페 팔렐라(왼쪽)가 10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첫 리허설에서 성악가들의 의상을 체크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쵸’의 의상 디자인을 맡은 디자이너 주세페 팔렐라(왼쪽)가 10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첫 리허설에서 성악가들의 의상을 체크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옷으로 말하라.

오페라에서 의상은 ‘제3의 언어’다. 배우들은 노래와 몸짓으로 말한다. 하지만 관객은 배우의 의상을 통해 작품의 시대와 장소, 극의 흐름, 등장인물의 성격과 직업을 알 수 있다. 베르디 ‘아이다’의 의상을 보면 이집트가, 푸치니 ‘투란도트’의 의상을 보면 중국이 배경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관객은 오페라 의상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하다.

오페라 의상 제작에 있어서 작품이 만들어졌던 16∼19세기 유럽 의상 고증은 필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연출가의 의도에 맞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18∼21일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쵸’의 의상 디자인을 맡은 이탈리아 디자이너 주세페 팔렐라는 “작품 준비 때 먼저 연출자와 음악을 함께 듣고 연출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연출자의 연출 의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대 의상은 재창조되기도 한다. 8일 끝난 서울시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에 등장한 의상들은 1900년대 초 한국의 의상들이다. 의상을 담당한 로산나 몬티는 “한국 전통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유럽인이 재해석한 동화적인 의상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오를란도 핀토파쵸’에서 브란디 마르테 역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테너 전병호.
‘오를란도 핀토파쵸’에서 브란디 마르테 역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테너 전병호.
화려하기만 한 의상이 최상은 아니다. 오페라의 중심인 노래를 하기에 불편하다면 좋은 의상이라고 할 수 없다. ‘오를란도 핀토 파쵸’에 출연하는 테너 전병호는 “의상이 배역의 성격과 지위를 잘 보여줄 수 있으면 좋다. 다만 편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2014년 국립오페라단의 ‘오텔로’의 경우 고증을 통해 남자 출연자들 의상 목 부분에 화려한 주름 장식을 달았지만 노래 부르기에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떼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배우들은 의상 때문에 울고 웃는다. 2008년 국립오페라단이 무대에 올린 ‘살로메’의 경우 주연 2명이 의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사퇴했다. 당시 의상은 슈퍼맨의 그것처럼 ‘빨간 삼각팬티’였다. 4월 솔오페라단의 ‘투란도트’의 경우 이탈리아에서 의상을 공수해 왔다. 몇 번 사용됐던 옷들로 유럽인의 체취가 옷에 배 출연진이 힘들어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가죽옷을 입은 칼리프 역의 성악가는 옷이 통풍이 안 돼 공연 뒤에 탈진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오페라 의상을 전문 제작하는 업체는 4, 5곳 정도다. 보통 한 작품에 쓰일 의상 제작에 7000만∼1억2000만 원의 비용이 든다. ‘오를란도 핀토 파쵸’의 의상 제작을 맡은 오기석 스타이코 대표는 “2010년 오페라 ‘안드레아 쉐니에’는 200벌의 의상에 제작 단가도 높아 2억 원 정도가 들었다. 한 벌에 보통 수십만 원에서 비싸면 300만 원 이상 비용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제작 기간은 보통 1, 2개월 정도다. 의상만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소품과 가발, 액세서리 등 등장인물이 몸에 지닌 모든 것을 제작한다. 이 때문에 오페라 의상 제작소에는 놀이공원 의상·소품 담당자 출신이 많다. 출연진은 화려하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오페라 의상이 탐날 때가 있다. 한 베테랑 출연진은 “어떤 의상은 공연 뒤에 집에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많은 예산과 장인의 노력이 들어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의상도 공연 뒤에는 창고로 보내진다. 재공연이 된다면 다시 무대에 오르지만 5년 넘게 창고에서 잠만 잘 때도 있다. 해외 오페라단은 10년 넘은 의상들은 일반인에게 싼 가격에 판매하기도 한다.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 의상을 박물관에 기증하거나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오를란도 핀토 파쵸#오페라 의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