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죽음의 땅에도 봄은 오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서경식 정주하 외 지음/형진의 옮김/360쪽·1만6000원·반비
◇죽은 자들의 웅성임:한 인문학자가 생각하는 3·11 대재난 이후의 삶/이소마에 준이치 지음·장윤선 옮김/308쪽·1만5000원·글항아리

동일본 대지진 사건 다룬 책 두 권
피해 지역 사진·이야기 묶은 ‘다시…’, 사고 후 나타난 균열 담은 ‘죽은…’
일본 사회의 거친 민낯과 함께 현대인의 안일한 삶 돌아보게 해

쓰나미로 폐허가 된 미나미소마 시 식당의 창틀 너머로 보이는 바위섬이 처연하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가해자인 도쿄전력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이고 있다. ⓒ정주하
쓰나미로 폐허가 된 미나미소마 시 식당의 창틀 너머로 보이는 바위섬이 처연하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가해자인 도쿄전력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이고 있다. ⓒ정주하
5년 전 3월 11일, 동일본을 덮친 쓰나미는 모든 것을 쓸어갔다. 남은 건 일본 사회의 벌거벗겨진 몸뚱이였다. 두 책은 그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다시…’는 정주하 사진작가가 2011년 11월부터 피해 지역을 촬영한 작품을 후쿠시마, 도쿄, 오키나와 등 일본 여섯 곳에서 순회전시를 하며 서경식 도쿄케이자이대 교수를 비롯한 한일 지식인, 일본 시민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사진전은 2012년 서울에서도 열렸다. 전시회 제목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에 신음했던 이상화의 시에서 따왔다. 식민지 조선에서, 후쿠시마 일대에서 개인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후쿠시마에서 80km 떨어진 료젠 산의 단풍은 찬란하다. 미야기 현 남부 지역의 감나무는 빨갛게 익은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매년 그랬듯이. 하지만 오색 낙엽을 밟아서도, 감을 먹어서도 안 된다. 방사능에 오염돼 있기 때문이다. 오염된 흙을 파란색 비닐로 덮어놓은 조선학교는 일본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절반의 보상금만을 겨우 손에 쥘 수 있었다.

식민지배, 후쿠시마 원전사고,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 모두는 대제국이 되기 위해 폭주했던 일본이 초래한 결과라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부국강병을 앞세운 일본은 아시아를 침략했고, 패망 후 산업화를 위해 원자력 에너지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군사대국을 향한 열망이 반영돼 있다.

‘죽은…’은 동일본 대지진 후 일본 사회에 빠르게 퍼져 나가는 균열에 주목한다. 가족과 집을 잃은 사람, 보상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 고향을 떠난 사람과 떠날 수 없는 사람은 마음의 문을 닫았다. 가족을 잃은 사람 중에는 감각이 마비된 채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잊으려 한다. 한 스님은 말한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심장이 멈출 때,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때.” 많은 피해자들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감이 달린 감나무. ⓒ정주하
방사능에 오염된 감이 달린 감나무. ⓒ정주하
모순의 덩어리는 커져만 간다. 피해 지역인 아오모리 현은 역병을 몰아내는 네부타 축제를 유지하기 위해 가해자인 도호쿠전력의 지원을 받고 있다. 바다 건너도 다르지 않다. 독일은 원자력발전소를 순차적으로 모두 없애겠다고 발표했지만, 부족한 전력은 프랑스에서 수입한다. 그 에너지는 원자력발전으로 만든다.

키우던 채소를 뽑아 건네는 일도, 이를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 돼 버렸지만 더 편하고, 물질적으로 더 잘살길 원하는 인간의 욕망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다. 주변 국가에 준 고통에 대해, 전 세계를 오염시킨 방사능 재해에 대해 침묵한다. 오직 자신이 입은 피해만을 호소할 뿐이다.

대지진은 어쩔 수 없는 재앙이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간이 초래한,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참사다. 학생 78명 가운데 4명만 살아남은 오카와 소학교의 교정에는 아이들이 손 글씨로 쓴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말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세계가 전부 행복해지지 않으면 개인의 행복은 얻을 수 없다.”

행복의 실현은 ‘더 많이, 더 빨리, 더 편하게’를 지향하는 삶의 방식에 물음을 던지는 데서 시작한다. 에너지에 삶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나는, 그리고 당신은 얼마만큼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가.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동일본 대지진#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죽은 자들의 웅성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