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를 찾아서]섬을 뒤덮은 새떼와 경이로운 나스카라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
‘미지의 땅’ 페루를 가다… 섬을 뒤덮은 새떼와 경이로운 나스카라인

다양한 나스카라인 중에서도 기하학적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벌새가 분지 안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스카라인은 그 목적이 뭔지 아직도 추측만 할 뿐이다. 나스카(페루)=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다양한 나스카라인 중에서도 기하학적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벌새가 분지 안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스카라인은 그 목적이 뭔지 아직도 추측만 할 뿐이다. 나스카(페루)=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남미의 페루. 아직도 우리 여행자에겐 미지의 땅이다. 그러니 이런 뉴스는 들어도 감이 오지 않는다. 지구촌에서 페루음식이 뜨고 있다는…. 3년 전 미국잡지 ‘포브스’는 온라인 판에 ‘지구촌 음식의 10대 트렌드’를 공개했다.

베이컨 줄이기, 우리고장 유기농 먹기 등 바람직한 식습관이 골자였다. 그런데 10개 트렌드 중에 특정국가로는 페루가 유일하게 들어갔다. 페루음식이 당시 뉴욕의 레스토랑가에서 새롭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 그 배경을 레스토랑리뷰 전문가 매기 넴서(미국)는 이렇게 분석했다. 중국 일본 스페인은 물론 안데스 고원의 전통 맛과 요리테크닉이 총집합된 덕분이라고.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한다. 페루의 대표음식 ‘세비체(Ceviche)’만 해도 그렇다. 이건 페루식 생선회다. 회로 뜬 하얀 살은 식초 대신 라임 즙을 뿌려 맛과 식감을 돋운다. 그런 뒤엔 가벼운 소스로 마무리하고 얇게 썬 양파를 올린다. 감칠맛을 선호하는 아시아인의 미각에도 잘 맞는다. 서양인에게는 특별한 맛으로 어필하고. 그런데 이 독특한 레시피는 과연 어디서 온 걸까.

일본이다. 지난 세기 초 페루에 정착한 일본인의 유산이다. 전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 (재임 1990∼2000년)를 기억한다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런데 페루음식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본을 훨씬 능가한다. 우리네 ‘중국집’처럼 페루 전역에 퍼져 있는 중식당 ‘치화(Chifa)’가 그걸 말해준다. 이 역시 19세기 중반 페루로 실려와 거의 노예취급을 당하며 일하다 뿌리내린 광둥 성 화교와 그 후대의 영향이다. 페루 인구의 아시안 비율은 5%.

지난달 나의 두 번째 페루 취재의 출발지는 역시 수도 리마였다. 첫날에는 리마의 청담동인 미라플로레스 지역의 ‘카사 모레이라(Casa Moreyra)’라는 19세기 스페인저택을 찾았다. 페루의 ‘국민요리사’ 가스톤 아쿠리오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아스트리드 이 가스톤’이다.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워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는 지구촌에 페루 음식 열풍을 일으킨 선구자. 대통령후보로 나서면 지지율 25%는 거뜬할 거란 말이 나돌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음식은 특별했다. 안데스산지와 태평양의 토박이 식재료를 전통과 현대의 기법으로 개성 있게 연출했다. 칠레-스페인-프랑스-스페인-페루(와인 생산지) 순으로 제공하는 와인페어링(Pairing·요리마다 어울리는 와인을 내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중 디저트와 함께 낸 옅은 호박(琥珀) 빛깔의 1994년산 페루 와인 ‘안티구아스 파밀리아스’가 관심을 끌었다. ‘이카(Ica)’라는 특별한 산지 때문이다. 이곳은 정밀 섬세한 직조로 이름난 고대 파라카스 문명의 발상지. 연 강우량이 수십 mm에 불과한 사막 한중간에 있다. 여태 수수께끼인 지상화(地上畵·geoglyph) ‘나스카라인(Nazca Lines)’으로 알려진 나스카의 이웃 도시이기도 하다.

이튿날 나는 팬아메리칸(Pan-American) 하이웨이를 차로 달려 이카를 향해 남행했다. 일정은 태평양변의 파라카스 반도에서 새들의 낙원 바예스타스 섬을 취재한 뒤 다음 날 이카로 가서 경비행기로 나스카라인을 살피는 것이었다. 팬아메리칸 하이웨이는 미국 알래스카 주의 북단(프루드호 베이)과 아르헨티나의 대서양변 남단(우슈아이아)을 잇는 장장 3만 km의 도로. 10억 인구의 아메리카대륙(39개국)을 종단하며 북미 9개국과 남미 8개국을 관통하는데 콜롬비아-파나마 국경의 폭 80km 늪지대(다리엔 갭) 100km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어졌다. 그중 리마∼이카 구간의 드라이빙은 환상적이었다. 도로사정이 열악한 극히 일부 구간을 빼면 늘 오른쪽으로 태평양을 접한 사막지대를 지나는 고속도로다. 가끔은 기막힌 풍경도 선사한다.
구아노를 정기적으로 채취하는 바예스타스 섬. 빨간 발 가마우지가 섬구릉을 뒤덮었다.
구아노를 정기적으로 채취하는 바예스타스 섬. 빨간 발 가마우지가 섬구릉을 뒤덮었다.

새들의 낙원 바예스타스 섬

파라카스 반도는 사구와 바다가 만나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광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해안 가까이의 바예스타스 섬은 펭귄과 새, 물개와 바다사자가 새끼를 키우며 서식하는 동물의 낙원이다. 지구상에서 이렇듯 많은 바닷새를 만날 수 있는 곳. 여기 말고 또 있을까 싶다. 게다가 여기선 바다사자와 펭귄 무리까지 새와 더불어 산다. 섬은 해안에서 스피드 보트로 30분 거리. 그런데 보트에 탄 채로 섬을 둘러보는 한 시간 내내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돌섬 표면이 온통 새들로 뒤덮인 독특한 광경에 놀라서다. 새들은 먹이활동도 왕성해 수면 위로 저공비행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중 압권은 몸집 큰 펠리컨 무리. ‘탱크 킬러’라는 미 공군의 A-10 전폭기의 비행을 연상시킨다.

이 섬엔 특별한 별명이 있다. ‘가난한 자의 갈라파고스’라는 것이다. ‘가난한 자’는 진화론(다윈)의 무대 갈라파고스 섬(에콰도르)까지 갈 돈이 없는 여행자를 뜻한다. 비록 갈라파고스까지는 못가지만 그곳에 버금갈 만큼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는 곳이란 의미다. 섬에 서식 중인 바닷새는 여러 종. 주인공은 단연 가마우지다. 개체수도 압도적이지만 그보다는 여길 ‘보물섬’으로 만든 ‘인광석’의 최대 공여자여서다. ‘구아노(Guano)’로 불리는 인광석의 주성분은 새의 배설물에 든 유기물(인산염과 질소화합물). 그게 암석으로 변하며 만들어낸 광상(鑛床)이 구아노다. 구아노에 들어있는 인과 질소는 비료와 화약 연료로 쓰인다. 그중 질산염은 합성암모니아 개발 전까지 서양에서 화약의 유일한 재료이자 최고의 비료 원료다.

이런 구아노 광상은 페루와 칠레의 태평양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됐다. 그걸 남미 식민지화에 나선 유럽의 탐욕스러운 상인들이 그냥 둘 리가 없다.

그들은 페루의 노예상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납치해온 원주민을 이 바예스타스 섬에 보내 구아노를 파냈다. 그러다 19세기 중반에 영국이 노예학대를 국제사회에 고발하자 그들 대신 광둥 성에서 꼬드겨온 화교를 섬으로 들여보냈다. 그게 페루에서 시작한 중국인 역사의 첫 페이지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 라파누이(이스터 섬·칠레)의 몰락에도 구아노가 관련돼 있다. 1862년 페루 노예상인에게 납치당해 칠레 연안의 구아노 광상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원주민이 라파누이로 귀향하며 천연두를 갖고 들어오는 바람에 섬 인구가 격감한 것이다.

구아노는 이 섬을 유지하는 생태계의 핵심 고리. 빗물에 씻겨 바다로 흘러든 풍부한 인산염은 플랑크톤의 먹이가 된다. 덕분에 섬주변의 바다는 물 반 고기 반. 새들이 이 섬에 몰려드는 건 그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먹성 좋은 가마우지의 배설물은 다른 새의 두 배쯤. 그런 가마우지가 섬을 지배하다 보니 바예스타스 섬의 구아노 광상이 노다지가 된 것이다. 바다사자 무리도 이 훌륭한 생태계의 수혜자이자 공여자. 11∼1월의 바다사자 출산기에 섬에서 보게 되는 콘도르 무리가 그것이다. 이 시기에 바다에 버려지는 고단백의 바다사자 태반이 멀리 아레키파의 안데스 고원에 사는 포식자를 이 섬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페루식 생선회무침 ‘세비체’(‘아스트리드 이 가스톤’ 식당).
페루식 생선회무침 ‘세비체’(‘아스트리드 이 가스톤’ 식당).

수수께끼의 나스카라인을 찾아

파라카스 반도를 등지고 사막 길로 남동진하는 동안 길가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포도와 야채농장으로 변한 사막이다. 그 규모는 엄청나다. 나미비아 사막(남아프리카)과 네게브 사막(이스라엘)에 이어 페루 서해안의 이 사막도 그린 혁명의 현장이다. 그렇다. 내가 지금 향하는 이카가 어떤 곳인가. 어제 리마의 레스토랑에서 나를 감동시킨 디저트와인의 산지가 아닌가.

이카까지는 멀지 않았다. 파라카스에서 70km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 70만 명이 사는 이카. 역시 상상한 대로 사구 한가운데의 모래평원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역사는 벌써 3000년을 헤아린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듯 보이는 이 팍팍한 사막과 황무지 땅. 그럼에도 이들은 여태 어려움 없이 잘 살아왔다. 지금도 푸른 농장을 일구며. 나는 나스카라인 경비행기 투어를 운영하는 항공사 모빌에어의 비행장(이카 외곽)부터 찾았다. 12인승 프로펠러 비행기는 새것이라 마음이 놓였다. 나스카는 여기서 팬아메리칸 하이웨이로 동남쪽 140km. 경비행기로는 30분쯤 걸렸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이카 주변의 사막. 50km 밖의 태평양은 보이지 않고 반대편 서쪽의 안데스 고원을 향해 막 몸을 일으키려는 듯한 황무지 구릉의 자락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황무지 땅에서 인상적인 것은 거대한 사각형의 녹색평원. 어제 마신 와인도 저기 어디쯤에서 딴 포도로 빚은 것이리라. 그런데 사막을 상공에서 보기란 내게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지난 21년간 지구사막 중 절반쯤은 가봤어도. 대단한 광경이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어쩌다 내린 비가 골을 이루며 흐른 흔적이다. 수분이 증발한 후에 남은 나트륨성분 때문에 하얗게 보인다. 그 허다한 흰 곡선으로 치장된 사막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드디어 나스카 상공. 이제부턴 작은 전쟁이 시작된다. 동체를 크게 기울이며 선회하는 기내에서 짧은 시간에 나스카라인을 확인하고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전쟁이라 함은 그게 그리 쉽지 않아서다. 숨은 그림 찾기 식이다. 몽키 벌새 거미 우주인 콘도르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형상은 수십 수백 개의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나스카라인과 혼재한다. 심지어는 새 형상이 지금도 발견될 정도로 숨겨진 것이 많다. 그런 나스카라인이 실재하는 면적은 500km². 서울 면적(605km²)에 육박할 정도다. 나스카라인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걸 만든 이는 파라카스 문명의 나스카 인. 조금 전 들른 이카 주민의 조상이다. 그런데 이걸 그린 이유는 아직도 오리무중. 지난 88년간 수많은 연구에도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그 설은 대략 세 가지. 신이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주시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가 내릴 경우 지표수를 유도하기 위한 수로로, 우주인과 교신하기 위해서 등등.

제작과정은 밝혀졌다. 작은 그림을 그린 뒤 어느 한 점을 기점으로 그 그림의 각 부분까지 거리를 재 그걸 반대편 공간에 몇 배 거리로 늘려 찍어 그 점을 잇는 방식이다.

그러면 확대된 형태로 그림이 복사된다. 그 선은 상공에서 실선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상의 실제 선은 왕복 2차로의 폭. 선은 지표면을 덮고 있는 돌조각(화산석)을 치우고 깊이 15cm로 파낸 것. 흰색을 띠는 것은 드러난 땅의 석회성분이 습기를 흡수해 회벽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지상화는 크고 다양하다. 길이로는 벌새 93m, 콘도르 134m, 몽키 93m, 거미 47m. 그리고 그 형상은 고대 파라카스 문화를 담은 그릇 등에도 등장한다.

summer@donga.com◎Travel Info


항공로
: 인천∼리마 직항로는 없다. 미국 경유시 로스앤젤레스·뉴욕∼리마 9, 10시간 소요

관광정보: 페루정부관광청(Prom Peru) 공식사이트 www.peru.travel

나스카라인: ◇경비행기투어: 모빌에어 www.movilair.com.pe

숙소:
◇리마: 힐튼 리마 미라플로레스 www.hilton.com
◇파라카스 반도: 호텔 파라카스(A Luxury Collection Resort) www.libertador.com.pe/en/luxury-collection/paracas-hotel/
◇이카: 라스 두나스 www.lasdunashotel.com. 버기카(Burgy Car) 사구투어(샌드보딩 포함) 운영

레스토랑: 아스트리드 이 가스톤(flak) www.astridygaston.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