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강수진]아시아의 ‘엄친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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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문화부장
강수진 문화부장
이 남자, 일단 키는 크다. 그런데 성격은? 경제력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남자에 빗대면 어떤 모습일까. 허우대만 멀쩡할 뿐 머리엔 든 건 없는 남자일까, 아니면 누구나 부러워할 ‘엄친아’일까.

우여곡절 끝에 건립 추진 10년 만에 마침내 개관(25일)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요모조모 뜯어봤다. 이 남자(문화전당)를 사귈까 말까 망설이는 여성(관광객)의 시선으로.

우선 외모. 조각미남은 아니지만 합격점은 줄 만하다. 덩치는 큰데 둔한 느낌 없이 날렵하다. 부지 규모는 13만5000m²(약 4만781평)로 서울 예술의전당이나 국립중앙박물관보다도 크지만 정문에서 바라본 첫인상은 위압감이 느껴지거나 웅장하다기보단 친근하고 소박했다.

지하광장 형태로 지어져 옥상이 지상 높이의 공원이 되고 건물 대부분이 최저 지하 4층 깊이(25m)로 건설된 독특한 구조다. 외관과 달리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엄청난 스케일이 실감났다.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민주평화교류원 등 전체 5개 원(院) 중에서 어린이문화원이 가장 호감 가는 모습이다.

둘째 집안. ‘민주 성지’ 광주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터에 세워진 ‘뼈대 있는’ 집안이지만 가정사가 좀 복잡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태동해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에서 결실을 맺었다. 정치적인 출생 배경 탓에 세 명의 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일각에서 ‘돈 먹는 하마’라는 구박을 받아 가며 찬밥,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째 지금도 ‘눈칫밥’을 먹고 있는 기색이다. 개관 잔치에 대통령 참석을 내심 기대했다가 총리 참석 소식에 실망한 것 같다.

다음은 경제력과 씀씀이. 지난 10년간 적지 않은 돈을 썼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건립 예산만도 7030억 원. 올해 예산은 연 800억 원, 이 중 콘텐츠 예산은 500억 원이었다. 남과 비교하긴 그렇지만 국립극장 연 예산은 300억 원, 이 중 콘텐츠 예산은 60억 원이다. 부모(정부)는 앞으로 딱 5년만 더 뒷바라지해 줄 테니 자립해 분가(分家)하라고 하는데 미래는 아직 불안해 보인다. 성공적인 분가를 위해서는 천덕꾸러기를 엄친아로 키워내야 한다.

역시 중요한 건 성격이 얼마나 나와 맞느냐다. 그는 아시아 예술의 최첨단을 걷고 싶어 한다. 문화창조원의 개관작은 ‘텍토닉스를 주제로 한 ACT 페스티벌’. 예술과 정보통신기술(ICT), 인문학이 융합된 다학제적 접근의 새로운 모델을 추구한다. 다른 원의 작품 취향도 비슷했다. 지역 기반 문화시설로서 보다 대중친화적인 콘텐츠에 대한 요구와 지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친구들에게 사진 찍어 자랑하기엔 외모에 비해 떨어지는 패션 감각도 아쉽다.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고 있는 프랑스 퐁피두센터는 내부 콘텐츠뿐 아니라 개성 있는 건물의 외관만으로도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젊은이들의 문화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LED장미정원같이 20, 30대들이 ‘인증샷’을 찍기 위해서라도 찾아올 만한 감각적인 공간도 필요하다.

어떨까. 이 정도면 매력이 충분할까? 망설여진다면 몇 번 더 만나봐도 좋을 것 같다. 마침 올 4월 KTX 호남선이 개통됐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1시간 47분이다.

―광주에서

강수진 문화부장 sjkang@donga.com
#엄친아#국립아시아문화전당#d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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