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을 ‘義戰’으로 본 대한제국, 동해-독도 탐사하고 海圖 만든 러시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한-러, 너무 달랐던 ‘未知와의 조우’

대한제국 외무대신을 지낸 김윤식(왼쪽)과 러시아 문학가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오른쪽). 두 사람은 서로를 잘 몰랐던 19세기 각자의 시각으로 한-러 양국을 바라봤다. 동아일보DB
대한제국 외무대신을 지낸 김윤식(왼쪽)과 러시아 문학가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오른쪽). 두 사람은 서로를 잘 몰랐던 19세기 각자의 시각으로 한-러 양국을 바라봤다. 동아일보DB
“러시아는 유럽의 전제 군주국으로 정치가 부패했으며 남의 토지를 탐하는 성질은 대대로 변치 않았다. 이제 일본과 전쟁을 시작하니 누구도 러시아의 패배를 불행히 여기지 않으며 … 일본의 이 전쟁은 가히 세계 초유의 의전(義戰)이라 일컬을 만하다.”

대한제국의 외무대신과 중추원 의장을 지낸 김윤식(1835∼1922)의 일기 ‘음청사(陰晴史)’에 나오는 대목이다. 러시아를 영토 야욕에 물든 패권국으로, 일본을 이에 맞서 의로운 전쟁을 벌이는 나라로 묘사했다. 러일전쟁 직후 외교권과 독도 영유권을 잇달아 일본에 빼앗긴 점을 감안하면 당시 외교 수장의 국제관계 인식과 현실 사이에 적지 않은 괴리가 느껴진다. 올해는 러일전쟁이 발발한 지 110주년이 되는 해다.

황재문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최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이 주최한 국제학술회의(‘러시아 혁명과 동아시아 담론 형성’)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러시아 관련 내용을 중심으로 김윤식의 일기를 집중 분석했다. 그는 1865년 12월부터 50년 넘게 일기를 썼는데, 지금은 중국에 파견된 사신인 영선사(領選使)로 뽑힌 1881년 이후의 일기만 남아 있다.

김윤식의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청나라 관리 당경성(唐景星)과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일찍이 듣건대 서양 여러 나라 가운데 러시아 이외에는 남의 땅을 탐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 말 또한 잘못된 것이었습니다.”(김) “대개 땅을 탐하지 않는 나라가 없는 건 돈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당)

서구 열강들도 제국주의 침략에 나서고 있다는 당경성의 견해와 비교하면 김윤식의 국제 정세 분석은 순진하기까지 하다. 황 교수는 “김윤식이 1896년 초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집권한 친러파에 의해 관직을 잃고 제주도로 종신 유배를 떠난 경험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는 체계적인 편이었다. 최근 첫 한국어 번역본이 발간된 러시아 문학가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의 ‘전함 팔라다’(동북아역사재단)는 1850년대 러시아와 조선의 첫 조우(遭遇)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러시아 군함 ‘팔라다’를 타고 유럽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일본을 거쳐 1854년 4월 거문도에 도착한 곤차로프 일행은 주민들과 한문으로 필담을 나눴다. 이들은 조선의 중국에 대한 조공 외교는 물론이고 지방 행정구역이 8도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동해안 곳곳을 탐사해 해도를 제작하는 등 한반도 지리를 파악하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서양에서 처음으로 독도를 발견하고, 동도와 서도의 정확한 위·경도를 파악한 뒤 러시아식 이름까지 지었다.

그러나 ‘조선인들이 담장을 쌓는 솜씨가 형편없는 것으로 보아 게으른 민족일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등 서양인 특유의 편견도 보였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러일전쟁#김윤식#곤차로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