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버무려 만든 요리, 만화라는 그릇에 담아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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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맛있는 철학’ 내고 자문한 권혁주 작가-신승철 박사-박준우 셰프

‘맛있는 철학’을 그린 만화가 권혁주 씨(가운데)와 철학 자문역을 맡은 신승철 철학박사(왼쪽), 요리 자문역 박준우 요리 칼럼니스트가 한자리에 모였다. 박 씨가 든 ‘맛있는 철학’ 표지에 그려진 주인공과 박 씨 얼굴이 닮았다. 권 작가는 “박 씨의 팬이라 이름도 준우라고 짓고 생김새도 똑같이 그렸다”고 했다. 박 씨는 책에서 12가지 요리에 얽힌 칼럼도 썼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맛있는 철학’을 그린 만화가 권혁주 씨(가운데)와 철학 자문역을 맡은 신승철 철학박사(왼쪽), 요리 자문역 박준우 요리 칼럼니스트가 한자리에 모였다. 박 씨가 든 ‘맛있는 철학’ 표지에 그려진 주인공과 박 씨 얼굴이 닮았다. 권 작가는 “박 씨의 팬이라 이름도 준우라고 짓고 생김새도 똑같이 그렸다”고 했다. 박 씨는 책에서 12가지 요리에 얽힌 칼럼도 썼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철학이란 재료로 요리를 만들면 어떤 맛이 날까. 요리를 담는 그릇이 만화라면?

그 답이 궁금해 ‘맛있는 철학’(애니북스)을 쓰고 조언한 3인방을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철학공방 ‘별난’에서 만났다. 웹툰 ‘그린스마일’의 권혁주 작가(36)와 ‘별난’ 공동대표이자 ‘식탁 위의 철학’을 쓴 신승철 철학박사(43),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1 준우승 출신 요리사이자 음식 칼럼니스트 박준우 씨(31)다. 최근 출간된 ‘맛있는 철학’은 권 작가가 두 사람의 조언을 얻어 12개 서양철학 개념을 12가지 요리로 풀어낸 책이다.

“중앙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그래서 만화를 그리는 동안 주변에서 ‘철학 만화는 언제 그릴 거냐’는 말을 듣고 살았죠.”

권 작가는 지난해 교보생명으로부터 웹진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에 요리와 철학을 접목해 만화를 그려달라는 제안을 받자 미뤄 두었던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철학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웹진에 연재했던 만화를 묶어 책으로 냈다.

박준우 씨가 만든 복숭아조림 누룽지탕을 만화로 옮겼다. 애니북스 제공
박준우 씨가 만든 복숭아조림 누룽지탕을 만화로 옮겼다. 애니북스 제공
그가 요리와 철학이 결합된 만화를 그리기 위해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신 박사다. 신 박사는 ‘식탁 위의 철학’에서 여러 가지 재료가 제맛을 내며 어우러지는 잡채로 질 들뢰즈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콩이 발효돼 된장이 되는 과정을 통해 스피노자의 ‘변용’을 설명했다. 신 박사는 “만화는 요리를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으니 요리 전문가를 섭외해 디테일을 살려보자”고 제안했고, 권 작가는 TV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팬이 된 요리사 박 씨를 찾아갔다. 박 씨도 권 작가의 팬이라며 흔쾌히 수락했다.

스토리는 권 작가의 몫. 주인공은 대기업 회장 아버지를 둔 대학 철학 강사 권준우다. 그는 자신의 수업이 수강생이 모자라 폐강될 위기에 놓이자 요리를 하며 철학하는 ‘맛있는 철학’ 수업을 준비한다. 여기에 가업을 물려받지 않으려는 아들이 못마땅한 아버지,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난 아내, 사춘기에 빠진 딸이 등장한다.

만화 창작 과정은 이렇다. 권 작가가 주인공이 오랜만에 찾아온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대접해야 하는 상황을 제시한다. 신 박사는 가까이하고 싶어도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 개념을 화두로 던진다. 요리사 박 씨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접할 만한 요리로 달고 부드러운 ‘복숭아조림 누룽지탕’을 제안한다. “치아가 좋지 않은 나이 든 아버지가 소화하기 쉽고, 부자간의 긴장관계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요리가 복숭아조림 누룽지탕이죠.”

이런 식으로 헤겔의 정반합 변증법은 레드 품종인 시라와 화이트 품종 비오니에가 섞인 와인 샤토 당퓌이와, 자크 라캉의 욕망이론은 어떤 재료든 마음대로 넣어 만들 수 있어 자신의 욕망을 투영할 수 있는 김치찌개와 만난다. 권 작가는 “주인공이 일상에서 요리하고 삶의 고민을 철학으로 푸는 모습을 보면서 철학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란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자문역을 맡은 두 사람은 ‘맛있는 철학’의 맛을 이렇게 설명했다.

“약과 양념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계피맛이 났어요. 만화적 재미와 철학, 요리를 횡단하는 이색적인 시도였습니다.”(신 박사)

“철학은 어려워서, 음식은 항상 옆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아요. 둘을 섞어놓으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일상의 맛이 났습니다.”(박 씨)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민재 인턴기자 연세대 행정학과 4학년   
#맛있는철학#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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