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프란치스코]한국 가톨릭의 역사 찾아… 한양으로 떠나는 성지순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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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내 주요 성지

조선시대 한양은 새로운 사상과 문물이 지식인 사이에 빠르게 전파되는 곳이었다. 국가의 법을 집행하던 중앙기관도 여럿 몰려 있었다. 서울대교구 내에 국내 가톨릭 초기의 태동과 수난의 역사를 아울러 돌아볼 수 있는 성지가 많은 이유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계기로 주요 성지를 소개한다.

명동대성당
명동대성당
명동대성당(중구 명동길): 서울 명동 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공동체가 탄생한 곳이다. 1784년 초겨울, 수표교(지금의 종로구 청계천로)에 있는 이벽의 집에서 영세식이 있었고 이듬해에는 현재 명동 부근인 명례방의 김범우 집에 모인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권실인 부자가 종교 집회를 열어 처음으로 조선 천주교회가 창설됐다. 지금의 명동대성당은 1898년 5월에 문을 열었다. 성당 지하 묘역에는 1839년 기해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5명의 성인과 순교자 4명의 유해와 유해 일부가 안치돼 있다.

새남터 성지(위쪽 사진), 의금부 터 표지석(아래쪽 사진)
새남터 성지(위쪽 사진), 의금부 터 표지석(아래쪽 사진)
새남터 성지(용산구 이촌로): 한국 천주교회 사상 순교한 성직자 14명 중 11명이 순교한 대표적인 순교 성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처형당한 것이 이곳 순교 역사의 시작이다.

서소문 밖 성지(중구 의주로): 서소문 밖 형장은 한양의 성문 밖인 데다 사람 왕래가 많은 곳이었고 형조, 의금부와 가까워 조선시대 중요한 처형지였다. 이곳은 한국 103위 순교 성인 중 44명의 성인과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 25명이 나온 한국 최대의 순교 성지다. 신유박해 때 이승훈 정약종이 여기서 순교했다.

절두산 성지(마포구 토정로): 프랑스 함대가 정박했던 양화진에 위치해 있다. 당시 박해자들은 천주교 신자들이 함대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처형함으로써 일반에 본을 보이고자 했다. 병인박해 이후 수많은 천주교인이 참수형을 당하면서 절두산(切頭山)으로 불리게 됐다.

당고개 성지(용산구 청파로):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 성인 9위를 포함해 10명의 신자가 순교한 곳이다.

조선시대 박해기관(종로구 일대): 시복식이 열리는 광화문과 세종로 주변은 형조와 의금부, 전옥서(감옥)가 몰려 있던 곳으로서 그 자체로 중요한 성지다. 동아일보사와 광화문 우체국 사이에 있던 우포청, 종로3가의 좌포청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치안을 담당하던 포도청을 구성했다. 한국 성인 103위 가운데 23명이 포도청에서 옥사했다. 인근의 광희문도 이름 모를 수많은 순교자가 나온 곳이다. 근처에 있는 가톨릭대 성신교정 내 성당에는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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