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꽃사진 5000장 50만원에 맘껏 쓰세요…北어린이 지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4일 11시 29분


코멘트
청와대 경제수석을 그만두고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포드대학에서 연구원 생활을 할 때 찍은 아몬드꽃. 그의 꽃사진 중 드물게 보는 \'전경성 사진\'인데 그는 은퇴 후 알레스카나 시베리아 몽고의 대평원에서 이보다 더 스케일이 큰 꽃 사진을 찍겠다고 한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그만두고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포드대학에서 연구원 생활을 할 때 찍은 아몬드꽃. 그의 꽃사진 중 드물게 보는 \'전경성 사진\'인데 그는 은퇴 후 알레스카나 시베리아 몽고의 대평원에서 이보다 더 스케일이 큰 꽃 사진을 찍겠다고 한다.
2008년 기자가 청와대를 담당하고 있을 때 대통령경제수석이었던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62)을 처음 만났다. 기자도 청와대를 떠나고 박 회장도 경제수석을 그만둔 지가 오래지만 '사진'이라는 공통분모 덕에 몇 달에 한 번씩은 그를 만난다. 만날 때마다 빠지지 않는 화제가 있다. 바로 '꽃 사진' 이야기다. 사진을 업으로 삼고 있는 기자에게 그는 자신 있게 꽃 얘기를 한다. 다른 사진이면 몰라도 꽃 사진은 그가 기자보다 한참 고수다.

그가 말하는 꽃 촬영기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꽃과 식물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한다. 보통 사람 수준의 꽃 이름만 알고 있는 기자에게 끝도 없이 나오는 꽃 이름과 그 생김새를 매치시키는 건 쉽지 않다. 그만큼 박 회장은 꽃에 대해 '박학다식'하다. 꽃 이야기를 들으면서 꽃과 전혀 연관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정통 경제관료가 '왜 꽃에 필이 꽂혔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가 생겼다. 박 회장은 북한어린이들에게 풍진예방주사를 지원하기 위해 '꽃이 사랑이다'는 기금 마련 사진전(12~25일·서울 인사동 나우 갤러리·02-725-2930)을 열고 있다. 그에게 사진을 통한 꽃과의 인연에 대해 물어봤다.

12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관 회장실에서 박병원회장이 꽃사진을 찍을 때 사용하는 렌즈일체형 소니카메라를 소개하고 있다.
12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관 회장실에서 박병원회장이 꽃사진을 찍을 때 사용하는 렌즈일체형 소니카메라를 소개하고 있다.
많고 많은 사물 중에 왜 하필 꽃을 찍느냐는 질문을 하자 '옛날 얘기'를 꺼냈다. 부산이 고향인 박 회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친이 해외출장을 다녀오시면서 '장난감 카메라'를 사오셨습니다. 그걸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꽃과 식물들이 주위에 많이 있었어요. 동래원예고등학교에 가면 식물원에 꽃들이 잘 정리돼 있어 마음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찍으려면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초상권이 없는 꽃은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잖아요. 예쁘면서 어떤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꽃을 어려서부터 찍기 시작한 게 오늘까지 온 것 같습니다. 중학교 들어가서는 라이카, 미놀타 등 선친 카메라로 꽃을 찍었는데 고3(경기고) 때와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서 행시공부를 할 때를 제외하곤 꽃 사진 찍기를 쉰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박 회장의 꽃 사진 경력은 근 50년이 넘는 셈이니 꽃에 대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 없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것이다.

꽃무릇은 낙화하지 않고 꽃자체가 그대로 마른다. 낙화를 좋아한다는 그의 취향이 독특하다고 여겼지만 이 사진을 보니 개화한 꽃에서 보는 화려함에 감탄하는 마음도 일리있지만 다 마른 꽃에서 느끼는 감정도 수긍할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꽃무릇은 낙화하지 않고 꽃자체가 그대로 마른다. 낙화를 좋아한다는 그의 취향이 독특하다고 여겼지만 이 사진을 보니 개화한 꽃에서 보는 화려함에 감탄하는 마음도 일리있지만 다 마른 꽃에서 느끼는 감정도 수긍할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때 이미 고가인 라이카를 만졌으니 지금도 꽤 좋은 카메라를 갖고 있을 걸로 짐작하고 어떤 카메라로 꽃을 찍느냐고 물었다. 2003년에 산 소니DSCF828 카메라로 찍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소한 기종이었다. 게다가 박 회장의 카메라는 와이드부터 망원까지 한 렌즈에 들어간, 28-200mm 줌렌즈가 보디에 붙어있는 렌즈 일체형이었다. "꽃 사진을 찍으려면 몸을 많이 굽히고 어떨 때는 볼을 땅바닥에 대야할 때도 있는데, 이 카메라만 유일하게 렌즈를 돌릴 수 있어 키 높이가 2, 3cm밖에 안 되는 작은 꽃을 찍을 때 아주 유용합니다."

'꽃이 사랑이다' 사진전 오프닝에는 한국경제를 주름잡던 60, 70대의 전직 경제 관료들이 많이 찾아왔다. 기자 짐작에 그들은 사진으로 제2인생을 풍요롭게 꾸려가고 있는 박 회장을 부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12일 서울 인사동 나우갤러리에서 열린 '꽃이 사랑이다' 오프닝에서 인삿말을 하는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12일 서울 인사동 나우갤러리에서 열린 '꽃이 사랑이다' 오프닝에서 인삿말을 하는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혹시 전직 관료들이 박 회장의 '사진인생'을 부러워하지는 않던가요?"

"부러워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사진 가르쳐 달라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사진을 어디서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라서 뭘 가르쳐 줄 수도 없고…, 또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그래서 다른 데에 알아보라고 합니다.(웃음)"

사진전을 주제로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사진으로 밥벌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더구나 프로는 더욱 아니기에 내가 찍은 꽃 사진은 볼품없는 사진에 불과하다"라며 애써 '실력'을 감춘다. 그러면서도 올해 11월경 은행연합회장에서 물러나 또다시 '백수'가 되면 시베리아나 몽골의 들판을 뒤덮고 있는 야생화와 한국의 '큰나무'들을 찍고 싶다는 속내를 비쳤다. 끝이 안 보이는 벌판에 지천으로 널린 야생화를 찍고 싶다는 바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기자에게는 클로즈 위주의 꽃 사진으로는 채울 수 없었던 '작가적 의도'를 마음껏 구현해보고 싶다는 또 다른 도전의 의미로 들렸다.

박병원회장은 '낙화'한 꽃들이 개화한 꽃들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사진은 2012년 하늘재 트레킹 중에 찍은 낙화한 쪽동백이 계곡물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이다. 그는 이 사진을 '꽃이 사랑이다' 포스터에 썼을 정도로 아낀다.
박병원회장은 '낙화'한 꽃들이 개화한 꽃들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사진은 2012년 하늘재 트레킹 중에 찍은 낙화한 쪽동백이 계곡물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이다. 그는 이 사진을 '꽃이 사랑이다' 포스터에 썼을 정도로 아낀다.
'꽃이 사랑이다' 전시회에서 얻어지는 수익은 전부 북한어린이들의 풍진예방주사 지원에 쓰인다. 전시회에는 한국에서 찍은 50여 점의 꽃 사진이 걸려있다. 액자 사진도 구입할 수 있지만 꽃 사진이 2000장과 5000장이 저장된 USB를 각각 20만 원과 50만 원에 사서 그 안에 들어있는 꽃 사진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이하다. 그가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북한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박 회장의 사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예방 백신은 가톨릭교회 봉사단체인 '독일 카리타스'와 '사단법인 봄'을 통해 지원한다. 인도적 지원일지라도 북한은 한국이 관여하는 것을 꺼리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백신의 도착과 지원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는 독일 카리타스와 손을 잡았다고 한다. 박 회장의 첫 번째 사진전 '꽃이 희망이다'의 수익금도 두 단체를 통해 북한에 지원돼 북한 어린이 300만 명을 예방접종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은행연합회관 회장실에서 1시간 넘게 진행한 인터뷰 말미에 '꽃을 통해 들은 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상당히 어렵게 답했다. '난 체'를 꺼려하는 그답게 에둘러서 말하는 통에 몇 번을 묻고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그가 왜 꽃 사진을 찍고 전시하고 북한 어린이들을 도와주는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12일 서울 인사동 나우갤러리에서 열린 '꽃이 사랑이다' 오프닝에서 유홍준 전문화재청장에 쪽동백 사진을 설명하는 박회장.
12일 서울 인사동 나우갤러리에서 열린 '꽃이 사랑이다' 오프닝에서 유홍준 전문화재청장에 쪽동백 사진을 설명하는 박회장.
장난감 카메라로 꽃을 찍을 때 소년 박병원은 '같은 꽃은 다 같다'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이순을 넘긴 박병원은 "같은 꽃일지라도 각각의 이름을 따로 붙여줘야 할 만큼 다름을 알게 됐고, 꽃 하나하나의 특성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박 회장은 "꽃은 세상에 많고, 초상권이 없어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기에 꽃을 찍는다"고 했지만 속내는 다른 듯하다. 다른 꽃은 물론이려니와 같은 꽃들조차 간절하게 말하는, '나의 존재를 알아 달라'는 수많은 꽃의 요청에 응하느라 사진기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사진은 사진가의 존재이유를 증명하기도 하지만 피사체의 존재이유도 증명함을 그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