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곽,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팍스 로마나’ 세계 사무총장을 지낸 로렌스 곽(곽은경·51)의 이야기다. 그는 스물다섯 살에 팍스 로마나 국제가톨릭학생운동(IMCS) 아시아대표로 선발된 후 25년간 세계 곳곳을 누빈 국제 NGO 활동가다. 그러나 이 책은 ‘국제 NGO계의 여자 반기문’ 식으로 그의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진 않다.
곽 씨는 오랜 세월 활동가로 지내며 겪은 무용담을 늘어놓기보단 여전히 세계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주력한다. 책에는 카스트 차별이 남아있는 인도에서 생리 때마다 ‘불결하다’는 이유로 거주하는 마을 밖으로 쫓겨나는 불가촉천민 달리트 여성과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가진 시에라리온에서 이권 다툼을 위한 전쟁의 도구가 돼 버린 소년병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곽 씨 개인과 관련한 이야기는 그의 오랜 친구인 작가 백창화 씨가 공동 저자로 참여해 책 사이사이 일화를 들려주는 게 전부다. 유일하게 곽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책 중반 약간과 에필로그 정도. 곽 씨는 한국 여권을 가지고 분쟁지역을 다닐 때마다 겪는 어려움 때문에 2003년 국적을 프랑스로 바꿨다. 국적 포기 서명을 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무너뜨릴 만큼 꼭 지켜내야만 하는 일인가 싶어 하염없이 울었다’는 그의 고백에서 ‘경계인’으로서의 고민이 느껴진다.
에필로그에서 곽 씨는 이번 책을 ‘프랑스 사람이 되어버린 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젊은 지성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작은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넓은 대륙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면서 ‘세상은 미국과 유럽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고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북한과 중국, 인도를 지나 동유럽과 아프리카에 우리를 바라보는 수많은 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썼다. 그 진심이 마음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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