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들 “내가 제일 잘나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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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자’는 무한경쟁 시대를 사는 여성들의 새로운 롤모델이다. 당차고 강한 자아를 추구하는 노랫말이 돋보이는 ‘Bad Girls’로 가요계에 컴백한 이효리. 동아일보DB
‘나쁜 여자’는 무한경쟁 시대를 사는 여성들의 새로운 롤모델이다. 당차고 강한 자아를 추구하는 노랫말이 돋보이는 ‘Bad Girls’로 가요계에 컴백한 이효리. 동아일보DB
“욕심이 남보다 좀 많은 여자/지는 게 죽는 것보다 싫은 여자/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 있는… 영화 속 천사 같은 여주인공/그 옆에 더 끌리는 나쁜 여자… 독설을 날려도 빛이 나는 여자/알면서 모른 척하지 않는 여자/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끌리는….”(이효리 ‘Bad Girls’ 중)

‘착한 여자 옆에 더 끌리는 나쁜 여자’가 인기다. ‘Bad Girls’를 내세워 3년 만에 5집 앨범으로 컴백한 이효리가 스타트를 끊었다. 그는 직접 노랫말을 붙인 이 곡에서 솔직하고 당당한 자신의 평소 성격을 나열한 뒤 ‘나쁘다’고 표현했다. 여기에 ‘난 나쁜 기집애’를 외치며 첫 솔로 활동을 시작한 걸그룹 2NE1의 씨엘(CL)이 나쁜 여자 바람에 뛰어들었다. 3월 발매된 신인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의 ‘나쁜 여자’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이효리는 무대 밖에서도 ‘나쁘다’. 컴백 후 한창 음악 활동을 할 시기에 순위제 음악 프로그램 출연을 잠시 쉬겠다고 선언했다. 궁금해하는 팬들에겐 “그냥 쉬고 싶어서 쉰다. 왜 묻느냐”라고 반문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선 그의 연인이자 작곡가인 이상순에게 “나를 가졌다고 생각 말라”고 쏘아붙였다. 사람들은 ‘나쁜’ 이효리의 모습에 열광한다. 그가 출연하는 요즘 방송 프로는 시청률이 반짝 상승해 ‘이효리 효과’를 누리고 있다.

“난 여왕벌, 난 주인공”이라 외치는 신곡 ‘나쁜 기집애’로 나쁜 여자 대열에 뛰어든 걸그룹 2NE1의 리더 씨엘.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난 여왕벌, 난 주인공”이라 외치는 신곡 ‘나쁜 기집애’로 나쁜 여자 대열에 뛰어든 걸그룹 2NE1의 리더 씨엘.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나쁜 여자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당찬 여자’로 해석된다. 가부장제가 기대하는 순종적인 여성의 반대편에 서 있다. 주위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찾는 신여성의 2013년 버전인 셈이다. 10세 안팎의 나이차를 거뜬히 뛰어넘어 연하남과 결혼을 발표한 탤런트 한혜진이나 아나운서 정세진도 나쁜 여자 신드롬과 무관치 않다.

요즘 드라마의 여주인공도 나쁜 여자가 대세다. ‘내 이름은 김삼순’(2005년)의 삼순이(김선아), ‘꽃보다 남자’(2009년)의 금잔디(구혜선), ‘시크릿 가든’(2010년)의 길라임(하지원) 이후로 착한 캔디형 여주인공 계보는 명맥이 끊겼다. 그 대신 올해 초 방영된 SBS ‘청담동 앨리스’의 한세경(문근영) 같은 ‘악에 받친 캔디’가 박수받는다. 한세경은 가난 때문에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자 부잣집 남자를 적극적으로 유혹한다.

나쁜 여자 신드롬은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주인공 캐릭터도 바꿔놓았다. ‘장옥정…’은 기존의 독한 장희빈 스타일에서 탈피해 희망을 놓지 않는 착한 알파걸을 그리기로 하고 순한 눈매의 김태희를 캐스팅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녀가 아니라, 어렵게 자랐지만 의상 디자이너로서 자아를 실현하는 착한 장희빈을 그려보겠다는 포부였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착한 여자 장희빈을 외면했다. 결국 제작진은 10회 방영분을 전후로 악녀 장희빈으로 노선을 급히 수정했고, 이후 6%대에 머물던 시청률은 두 자릿수로 급상승했다.

왜 나쁜 여자가 유행할까. 대중문화 평론가들은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여성들이 남자들과 경쟁해 살아남으려면 나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배국남 문화평론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남자가 출세하고 싶어 하면 ‘야망을 가졌다’고 보지만, 여자의 경우 문제 있는 (나쁜) 여자로 낙인을 찍는다”며 “여성 시청자들이 예전에는 드라마 속 캔디 여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다면, 이제는 현실성 있는 나쁜 여자들을 통해 공감하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나쁜 여자#이효리#씨엘#드라마 여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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