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특종욕망 퓰리처-허스트의 사생결단 전면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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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이드 전쟁/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404쪽·1만4000원/양철북

1897년 6월 미국 뉴욕. 푹푹 찌는 날, 소년들이 부둣가에서 화려한 붉은 방수천에 싸인 시체 토막을 건졌다. 그즈음 브롱크스 숲에서도 부패한 한 남자의 근육질 몸통이 발견됐다. 처음에 경찰은 의대생들의 장난이라 여겼지만 뭔가 이상했다. 전문가가 하듯 칼을 쓰지 않고 톱으로 머리와 몸을 분리했다. 검시관 자문의는 시체 다리 부분이 삶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 기괴한 살인사건은 부수 확장에 목을 맨 신문사들에 탐나는 먹잇감이었다. 언론계 거물인 뉴욕월드의 조지프 퓰리처(1847∼1911)와 뉴욕저널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가 벌인 특종 전쟁은 사생결단 전면전이었다. 포틀랜드 주립대 조교수인 저자는 19세기 말 뉴욕에서 벌어졌던 실화를 추리소설처럼 박진감 있고 밀도 있게 그려냈다.

경찰이 사건 조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기자들은 이미 현장과 단서를 쫓아 뛰어다녔다. 시체 발견자의 사진을 찍고, 발견 지점을 지도로 그리며, 방수천 무늬를 보여주고 벌거벗은 시체를 그림으로 그려 1면에 실었다. 신문사 편집국에서는 쉴 새 없이 고성이 울렸다. “움직여, 빌어먹을, 움직이라고!” 퓰리처와 허스트는 특종을 잡으려고 토막살인 사건 전담팀을 꾸렸다.

허스트는 살인 용의자의 집을 통째로 임대해 경찰과 자사 기자만 들여보냈다. 심지어 경쟁사 기자들을 방해하려고 집 주변의 전화선을 다 끊어버렸다. 경쟁사인 뉴욕월드에 스파이를 심어놓고, 일자리 없는 기자 서른 명을 임시직으로 고용해 방수천 추적에 투입시켰다. 뉴욕저널이 거침없는 기세로 독자를 빼앗아가자 퓰리처는 “방해꾼을 박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권위 있는 보도·문학·음악상인 ‘퓰리처 상’의 그 퓰리처가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영화 ‘시민 케인’의 모델인 허스트가 언론 권력을 쥐고 흔드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과도한 취재 경쟁과 치정에 얽힌 살인 사건이 얽혀들면서 인간의 욕망은 과연 어디까지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타블로이드 전쟁#특종#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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