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를 아는 일본인은 자기네 무속인이 아니라 한국인 무당을 최고로 쳐요. 잘 맞히고 잘 해결한다고.”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무당 박모 씨(60)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 ‘일’을 하러 다녔다. 지금은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일본에 간다. 10년 이상 인연을 맺어온 단골만 30여 명이 있다. 반은 재일교포, 반은 일본인이다. 이들은 직접 한국에 오기도 한다.
고객은 보통 재일교포 여성에서 시작해 이들과 결혼 등으로 인연을 맺은 일본인 남성, 그리고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순수한’ 일본인으로 확장된다. 의뢰하는 내용 역시 단순히 점을 보는 것에서 부적을 쓰고 굿을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비용은 한국의 2배 이상인데, 굿의 경우 3000만∼5000만 원을 받는다. 보통 박 씨가 우리말로 이야기하면 일본인 ‘신딸’이나 신도가 일본어로 통역을 해준다.
박 씨처럼 해외로 진출하는 K무당이 늘고 있다. 한국무속학회 소속인 이정재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10월 말에 열린 ‘2012 한국민속학자대회’에서 ‘글로벌 시대 민속학의 과제-세계 한인의 무속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그는 여기서 “한국 무당이 일본이나 미국, 중국에 가 ‘원정 굿’을 하는 게 이젠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며 “특히 일본의 경우 한국 무속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 금천구에서 활동하는 무당 김모 씨(57)도 15년 이상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했다. 김 씨는 “건강, 사업, 남녀 관계 등 의뢰하는 내용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일본인은 신뢰를 쌓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이 한국인보다 3배 이상 든다”고 말했다. “그들은 믿기 전까지는 굿비로 100만 원을 주는 것도 주저해요. 그래서 저는 굿을 할 때 소액의 계약금만 받은 후 실제로 효과가 있으면 나중에 돈을 알아서 부쳐 달라고 해요. 효과를 보면 수천만 원도 아끼지 않죠.”
아예 일본에 거주하는 무당도 적지 않다. 이들은 주로 재일교포가 모여 사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재일교포 집주촌(集注村)인 오사카 시 이쿠노 구 인근에는 ‘조센데라(朝鮮寺)’라 불리는 사찰이 100여 개나 있는데, 이곳의 보살과 스님은 사실상 무당과 박수(남자 무당)에 해당된다. 이 교수는 “이들은 제주도 전통 굿을 기반으로 불교와 일본 종교인 슈겐도(修驗道)가 혼합된 굿을 행한다”고 설명했다. 가격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점을 보는 건 1만 엔(약 13만 원), 굿은 500만 엔(약 6570만 원) 선이다.
최근에는 중국과 미국 호주에도 K무당들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서구 사회에서도 10여 년 전부터 인디언이나 시베리아 무속과 결합한 네오 샤머니즘이 영성 회복과 자아실현, 치유의 수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 무속은 중국과 서구 사회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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