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위안부-양공주-외국인 윤락녀… 그 슬픈 3각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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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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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일곱집매’ ★★★★

기지촌 여성 문제를 다층적 시각으로 포착한 창작극 ‘일곱집매’. 극단 해인·공상집단 뚱딴지 제공
기지촌 여성 문제를 다층적 시각으로 포착한 창작극 ‘일곱집매’. 극단 해인·공상집단 뚱딴지 제공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를 지켜보며 분노와 착잡함을 금할 수 없는 지금 이 순간, 연극은 죽비처럼 우리의 어깨를 내려친다.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그 책임을 외면하려는 것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강제성(일본군 위안부)과 자발성(기지촌 여성)의 차이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운영과정에 국가가 개입했던 책임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평택 미군기지촌 마을을 무대로 한 연극 ‘일곱집매’(이양구 작·문삼화 연출)는 소리 높여 반성을 촉구하지 않는다. ㄱ자 형태로 구성된 7개의 쪽방과 7명의 배우를 음표 삼아 슬픔의 선율이 무한 반복되는 푸가의 형식으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든다.

메인 테마는 1960년대 이 기지촌으로 흘러들어와 양공주로 살면서 마이클이란 사생아를 낳았지만 미국으로 입양을 보낸 뒤 홀로 쓸쓸히 늙어가는 순영(김지원)이다. 어린 나이에 가출했다가 순영의 손에 이끌려 양공주가 됐지만 낙천적인 화자(김시영)는 순영의 단조 테마를 장조로 전환한 변주 테마다.

제2테마는 재일교포 3세로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고하나(최설화)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의 사례연구로 순영을 인터뷰하기 위해 쪽방 중 하나에 둥지를 튼다. 하지만 순영과 화자에게 하나는 기지촌 여성을 동정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응시하는 수많은 타자 중 하나일 뿐이다.

미군기지 철수 시위를 펼치면서 자원봉사로 기지촌 여성을 돌보는 시민운동가 상철(한철훈)은 그 ‘닿을 수 없는 거리’를 형상화한 서브 테마이다. 미군에 의지해 살아가는 기지촌 주민으로 상철의 대척점에 선 춘권(조시현)은 그에 맞서는 서브 테마를 구성한다. 상철의 테마는 하나의 변주이고 춘권의 선율은 화자의 변주다.

제3테마는 필리핀 출신 미군클럽 여성 써니(나다래)다. 써니를 매개 삼아 순영과 하나의 테마가 겹쳐진다. 하나의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였고 하나의 어머니는 할아버지에 의해 미군 클럽에 팔려갔다. 그렇게 미군기지촌 양공주와 일본군 위안부, 외국인 윤락녀라는 3개의 테마가 슬픔의 무한선율을 빚어낸다.

그 선율은 가해자와 피해자, 내부인과 외부인의 이분법선상에서 맴돌지 않는다. 외부인인 상철의 시각에 따르면 순영과 화자는 미국과 한국 정부가 공모한 구조적 범죄의 희생양이다. 하지만 순영과 화자는 결코 이를 수긍할 수 없다.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들은 한낱 운명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선택이 그 모든 비극적 결과와 그에 대한 책임을 감내한 자발적 선택임을 강조한다.

연극이 주는 극적 감동은 여기서 발원한다. 그들은 시대적 불꽃에 현혹된 불나방이기를 거부한다. 삶의 오욕을 모래 삼아 저마다 가슴 속에 진주 한 알을 품어내는 진주조개를 꿈꾼다. 연극 마지막에 등장하는 흑인병사 마이클(유명상)은 이를 상징하는 흑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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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제목은 일곱 여성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는 경기도 평택 기지촌 마을의 옛 이름에서 따왔다. 9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 1만∼1만5000원. 070-8236-0445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연극#공연#공연 리뷰#일곱집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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