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가꾸는 희망 나눔 현장]<1> ADHD 어린이 강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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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볼때 AD<주의력 결핍> 잊고, 셔터 누를 때 HD<과잉행동장애> 사라져요

강당에는 ADHD 어린이, 학부모, 자원봉사자가 한데 어울려 강사의 지시에 따라 사진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왼쪽). 종이에 구멍을 뚫어 얼굴 멀리 혹은 가까이 대보면서 광각렌즈와 망원렌즈의 원리를 익히는 어린이.
강당에는 ADHD 어린이, 학부모, 자원봉사자가 한데 어울려 강사의 지시에 따라 사진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왼쪽). 종이에 구멍을 뚫어 얼굴 멀리 혹은 가까이 대보면서 광각렌즈와 망원렌즈의 원리를 익히는 어린이.
● 서울특별시 어린이병원

7월 28일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 강당에 ADHD 증상을 가진 초등학생 29명과 중학생 2명이 모였다. 함께 온 학부모와 자원봉사자까지 포함해 인원이 100명에 가까워지자 작은 강당 안이 왁자지껄했다. 어린이들이 모인 까닭은 여름캠프를 떠나기에 앞서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사장 강동환·이하 캐논)이 주관하는 사진 강좌를 듣기 위해서다. 캐논은 올 하반기부터 ‘기업의 사회복지 참여’의 일환으로 어려운 환경의 초·중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유익한 취미 활동을 제공하기 위해 매달 사진 강좌를 열기로 했다. 아울러 교육 때마다 기부형식으로 해당 단체나 개인에게 30만 원 상당의 콤팩트 카메라 10대씩을 상품으로 증정한다. 첫 번째 대상이 바로 ADHD 어린이들.

사실 캐논 실무 강사진은 아이들이 너무 소란스러워 수업이 진행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수업이 진행되니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강사 임슬기 씨의 지도에 따라 아이들은 물론이고 함께 온 학부모들도 금방 카메라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임 씨는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7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사진 강의를 많이 한 전문가였다.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의 사진 찍기를 도운 것도 원활한 진행에 도움이 되었다.

이날 사진교육 중 아동들이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어안렌즈 기능이나 토이카메라 기능. 광각렌즈의 기능을 극대화하거나 주변부를 어둡게 처리해 가운데로 시선이 집중하도록 하는 것으로 실제보다 사물이 왜곡되게 찍히는 사진들이다. 지도교사는 “ADHD 어린이들은 사물이 평소에 보던 것과 다르게 보이면 일반 어린이보다 더 많이 호기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수업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도교사의 말처럼 이내 궁금증을 참지 못한 몇몇 어린이가 일어서서 갑작스레 질문을 한다. 강사의 질문에도 서로 대답하겠다며 나선다. 일순 교실이 어수선해지려는 순간, 강사 임 씨가 재치 있게 한 명씩 순서를 정해 답해 주며 진행하니 오히려 수업이 활기를 띤다.

어린이들은 사진기가 즉각적으로 사물의 모습을 재현해 내는 것에 신기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찍은 옆 사람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약간의 소란이 있긴 했지만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일반 어린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에 대해 병원 관계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오전에 약을 먹기 때문에 지금은 약 기운이 활성화되어 집중이 되는 편이다. 약 복용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는 주의력이 저하된다”며 ADHD에 숨겨진 아픔을 살짝 드러낸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ADHD 아동은 학령기 동안은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그 시기까지 주의력을 관장하는 이마엽(전두엽)의 발달이 계속 진행되기 때문입니다”라고 할땐 생각보다 약을 오래 복용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짠해온다.

사진전문기자인 필자가 두 번째 강사로 나섰다. 사진기 조작 방법을 배운 어린이들에게 ‘엄마 아빠를 예쁘게 찍는 방법’을 강의했다. 강사로서 경력이 일천해 긴장이 됐다. 아무리 아이들이라 해도 교육인데 싶어 사진의 기본원리부터 알려주기로 했다. 노출과 셔터타임, 앵글을 나름대로 쉽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은 ‘나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하듯 무표정 그 자체였다. 강의 도중 기자는 그 이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교육 대상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교육이 새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그냥 엄마 아빠가 웃을 때 가까이서 사진을 찍으면 돼요’라고 한 가지만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나을 뻔했다.
“엄마 아빠 웃는 모습 찍으니 정말 재밌어요”… 얼굴 가득 자신감 넘쳐

● ‘가족 사진찍기’ 숙제 내줬더니…

▲▲집 베란다에서 자신이 계란껍질 속에 심은 식물을 집중력 있게 촬영하는 김상우 군.▲김상우 군이 직접 찍어 자신 있게 내보인 ‘아름다운 우리 가족’ 사진. 가운데는 상우 군의 동생.
▲▲집 베란다에서 자신이 계란껍질 속에 심은 식물을 집중력 있게 촬영하는 김상우 군.
▲김상우 군이 직접 찍어 자신 있게 내보인 ‘아름다운 우리 가족’ 사진. 가운데는 상우 군의 동생.
병원 관계자가 특히 사진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어린이 중 한 명을 소개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김상우(가명·12) 군이다. 얌전해 보여 적어도 어머니에게 어릴 적 얘기를 듣기 전까진 ADHD 어린이가 맞나 싶었다.

상우는 ADHD의 여러 증세 중 특히 충동성이 강한 스타일의 아이였다고 한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호기심 나는 것은 반드시 만지거나 직접 해봐야 하는 아이였다. 가만히 있질 못했다. 상우에게 ADHD 증세가 있다는 것을 부모들이 안 것은 6세 무렵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부모의 착각이었다, 2학년이 되면서 심각한 ADHD 증세가 나타났다. 교실에서 선생님께 혼나는 일이 빈번해졌고 이 때문에 우울증도 생겼다. 3학년이 되자 증세는 더욱 심각해지면서 상우는 폭력적으로 변해 갔다. 학교는 물론이고 학원이나 집에서도 늘 꾸지람을 듣는 아이가 되고 말았다. 다행히 상우가 ADHD라는 것을 인지한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었다. ADHD와 함께 우울증 치료를 위한 미술심리 치료도 함께 받았다. 최근에는 이사하면서 자연스레 전학을 해 이전의 안 좋은 기억도 조금씩 지울 수 있었다. 이제는 제법 의젓해진 상우를 볼 수 있게 된 이유였다.

3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상우네 집을 찾았지만 만나기로 한 어머니는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겨 상우와 둘이 마주 앉았다. 방학인데도 학원을 몇 군데씩 다녔다. 겨우 학원 시간의 빈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2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다.

―사진은 많이 찍어 봤나요.

“엄마가 움직일 때도 찍어 보라고 해서 여러 번 찍었는데 자꾸 흔들렸어요.”

그렇지만 막상 상우가 찍은 사진을 컴퓨터에 올려놓고 보니 핀트가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이 가운데 찍힌 사진이 별로 없었다. 뒷모습이나 머리 부분만을 불필요하게 찍어 놓았다. 산만한 탓인지 아니면 아직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명확지 않았다. 하지만 집중해서 사진찍는 모습을 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카메라를 잡을 때 손가락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가리는 점 등만 지적해 주었다.

―그런데 과제로 내준 부모님 모습 사진이 거의 보이지 않네요.

“아빠는 부산에서 일하시고 주말에만 오세요. 엄마도 직장에 나가세요. 저는 주로 동생과 있는 시간이 많아요.”

못 찍은 사정이 있었다고 항변한다.

상우에게 일단 엄마 아빠의 모습을 예쁘게 찍는 방법을 속성으로 알려 주기로 했다.

“엄마 아빠를 모니터 한가운데 표정이 보일 정도로 크게 배치한 다음 네가 부모님을 웃겨봐. 그리고 웃으실 때 사진을 찍어 봐. 활짝 웃고 있는 부모님 모습이 예쁘게 보일거야. 아버지가 바빠서 못 올라오시면 엄마와 동생이 함께 있는 모습도 괜찮아”라고. 더 나은 사진을 위해 한 주 동안 더 찍어 보기로 약속했다.

11일 다시 만난 상우의 카메라에 400장 가까운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다. 약속한 대로 부모님의 웃는 모습도 찍혀 있었다. 사진을 보여 주는 상우의 얼굴에도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번에는 잘 찍었네. 어떻게 찍었어요?

“엄마 아빠를 말로 웃기게 한 다음 그 순간에 찍었어요.”

―사진을 찍어 보니 뭐가 좋아요

“웃기는 장면 찍어서 식구들과 같이 보니 재밌어요. 동생하고 사이가 안 좋을 때 사진을 찍어 주니 좋아해요. 사진기가 있으니까 가족간에도 행복해지는 느낌도 들어요.”

그러면서 “사진을 찍으니 집중을 하게 돼서 산만한 것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라며 자신의 증세를 염두에 둔 어른스러운 말도 곁들인다.

상우와의 만남에서 일반 어린이와 다른 점을 눈치 채기는 어려웠다. 상우 어머니는 아들이 한자리에서 50분 정도 견딘다고 했다. 하지만 상우는 3시간 정도 앉아서 공부할 수도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렇게 오래 공부를 하면 따분하지 않으냐고 했더니 공부하다 지칠 때 노래를 부르면 금방 괜찮아진단다.

얼마 전 상우가 어떻게 지내는지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방학 동안 잠시 약 복용을 중단한 상태라고 한다. 부작용으로 입맛이 떨어지고 잠을 잘 자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증세는 상우의 신체발달에 영향을 끼쳐 자기 또래보다 키도 작고 몸무게도 적게 나가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약을 복용해야 한다. 부작용이 있을지언정 약을 복용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행동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어머니에겐 또 다른 걱정이 있었다. 곧 사춘기를 맞을 상우가 안 그래도 자제력이 부족한데 게임 같은 자극적인 매체에 빠지기라도 하면 그것을 어찌 막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서울시 어린이병원 임상심리전문가 이민영 씨는 “ADHD는 주의력과 조절능력의 부족으로 적응상의 어려움을 유발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질환은 아니다. 대부분 지능지수(IQ)가 정상 범주에 있으며 본인이 좋아하고 즐기는 과제에 한해서는 놀라운 집중력과 에너지를 보여 주는 아이들이다. 상우는 머리도 좋지만 자기 자신이 증세를 인지하고 스스로 조절하고자 하는 동기 수준이 높다. 치료도 지금까지 잘되고 있어 부모의 꾸준한 관심과 지도가 따른다면 나중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아울러 “이번 카메라 교육도 ADHD 어린이들에겐 자기조절 능력 향상과 스트레스 해소라는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덕담을 건넸다.

ADHD
는 AD(attention deficit·주의력 결핍)와 HD(hyperactive disorder·과잉행동장애)가 결합된 소아 정신건강 질환이다. 지속적인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충동성을 가지고 있다. 유아기에 이런 행동은 정상이지만 학령 전기(4∼6세)나 학령기(초등학교 1∼6년)에도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치료해야 한다.

구체적인 특징은 매순간 주의를 주지 않으면 집중하지 못하거나 말을 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모습,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움직이거나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떠드는 모습, 높은 사다리에 기어오르는 등의 위험한 행동, 학교에서 안 싸워 본 애가 없을 정도의 막무가내 행동.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하려는 행동 등을 들 수 있다. 보통 한 학급에 ADHD 어린이가 두세 명에 이른다. 뇌 안의 신경전달물질(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의 기능이 떨어져 생기는 병으로 이를 조절하는 약을 먹어야 한다.

글·사진=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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