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러브레터부터 참여詩까지… 안도현의 10번째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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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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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항/안도현 지음/112쪽·8000원·문학동네

시인 안도현(사진)의 열 번째 시집. 등단 28년째를 맞은 시인은 따뜻하고 편안한, 대중성 높은 시들을 써왔다. 작가의 여린 감성은 여전하다. 시 ‘폭’은 있는 그대로 손 떨리는 연애편지로 옮겨질 듯하다.

‘바다의 폭이 얼마나 되나 재보려고 수평선은 뒷등에 등대 같은 연필을 꽂고 수십억 년 전부터 팽팽하다//사랑이여/나하고 너 사이 허공의 폭을/자로 재기만 할 것인가’(‘폭’ 전문)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처럼 사랑은 드넓고 망망하다. 바다는 등대(연필)라도 있지만 사랑은 무엇으로 잴까. 여전히 달콤하고, 읽을수록 짙은 향기가 나는 시어들이 보석처럼 책장 속에 숨어있다. 그것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간절한 것은 통증이 있어서/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 하고 나면/이 쟁반 위 사과 한 알에 세 들어 사는 곪은 자국이/당신하고 눈 맞추려는 내 눈동자인 것 같아서’(‘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에서)

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익숙했던 것을 달리 보는 ‘안경’과도 같다. 전북 전주에 있는 시인은 평범한 텃밭에서 삶을 보는 색다른 시선을 모색한다. 배추 잎을 파먹은 애벌레가 추후 나비가 돼 날아가는 공간을 배추밭의 확장 공간(‘재테크’)으로 여기거나 둥굴레가 싹을 틔운 것이 새싹의 힘이 아니라 땅이 제 거죽을 열어줘서 가능했다(‘비켜준다는 것’)는 것이다. 작은 텃밭의 ‘소출’은 시집을 풍성하게 만든다.

시인은 서정시뿐만 아니라 사회 비판적인 시를 담기도 했다. 시 ‘사다리와 숟가락’에서는 달을 숟가락으로 떠먹는 아이가 나온다. 남들보다 높은 사다리를 갖지 못한 아버지는 아이에게 달을 먹이는 데 실패한다. 하지만 다른 집은 높은 사다리를 갖고 있어 달을 떠먹는 데 성공한다. 이제 ‘아버지가 된’ 시인은 자식에게 달을 먹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우리 사회의 계층 격차와 세습에 대한 비판이 읽힌다.

시인은 “말과 문체를 갱신하겠다”며 ‘예천’을 비롯해 몇몇 시들을 사투리나 산문체로 쓰기도 했다. 시집을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서정시는 여전히 깊고 맑다. 참여시는 새롭다. 문체의 변화는 글쎄….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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