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군더더기 없는 자연… 유영국 10주기전

  • 동아일보

■갤러리 현대 강남

유영국의 ‘Work’ (1988년).갤러리 현대 제공
유영국의 ‘Work’ (1988년).갤러리 현대 제공
삼각형과 사선 등 기하학적 선과 면, 강렬한 원색과 보색의 대비로 완성된 추상의 풍경들. 그 속에선 지나침이나 모자람을 찾기 힘들다. 감성과 이성, 한쪽에 기울지 않고 조화를 추구한 그림에서 반듯한 삶, 반듯한 작가 정신이 오롯이 살아 숨쉰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 현대 강남에서 6월 17일까지 열리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10주기’전은 밀도 높은 색면 추상의 매혹을 일깨우는 자리다. 김환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씨앗을 뿌린 화가 유영국(1916∼2002)의 10주기를 기념하는 회고전으로 1930년대부터 만년까지 대표작 60여 점을 시대별로 보여준다. 전시에 맞춰 국영문 화집이 발간됐고 25일 오후 2시 이인범 상명대 교수의 강연도 열린다. 3000∼5000원. 02-519-0800

화가는 ‘어떤 구체적인 대상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선이나 면이나 색채, 그리고 그런 선과 면과 색채들로 구성된 비구상적인 형태로서의 자연’에 관심을 쏟았다. 그래서 평생 작업의 큰 줄기는 변함없지만 기하학적 구성의 엄격한 추상에서 표현적 추상으로, 순도 높은 구축적 색면 추상에서 자연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추상으로 조금씩 달라지는 물줄기를 전시에서 짚어볼 수 있다.

당시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그는 자유스러운 학풍의 도쿄 문화학원 유화과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귀국 후 김환기 이규상과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했으며 ‘국전’을 거부하고 ‘50년 미술협회전’ 창립에 나서는 등 한국모더니즘 회화 운동을 이끌었다. 자연, 특히 산을 즐겨 표현한 그림은 ‘숭고와 관련된 산수화인 동시에 색면 추상화’(미술사학자 정병관)로 평가된다. 어떤 군더더기 없이 자연의 본질만 남긴 작품이지만 동양의 정신성과 서구의 기법이 만나면서 서정적 울림이 스며든 고유한 추상이 탄생한 것이다.

화가의 막내아들 유건 씨(건축가)는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그림 그리는 모습”이라고 회고했다. 돈과 명예 같은 세속의 가치나 사람들과 섞이는 일엔 관심 없이 작업실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림을 그렸던 화가. 낭만적 일화나 신화를 만들지 않은 대신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그림에 쏟아 붓는 근면한 예술가의 전범을 남겼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미술#전시#유영국 10주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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